[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0장 강해]
를 시청해보시고,
과연,
개역개정 성경과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이 무엇이 다른가?
과연,
기존의 성경해석과
박경호목사의 성경의 해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한번
비교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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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0장 강해]
(제목 : 경쟁심을 통한 부흥)
259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낳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라헬이 자기 자매에게 질투하였으며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아들들을 내어 주세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요.”
야곱의 진노가 라헬에게 분노하였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에게서 태의 열매를 내지않게하신 하나님들을 내가 대신하겠느냐?”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낳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레아가 언니인데 루우벤을 낳고, 시므온, 유다를 낳으면서 자신은 낳지 못한 것을 본 것입니다.
라헬이 자기 자매에게 질투하였으며
질투! 지옥입니다. 시기, 질투심은 지옥 사유가 됩니다.
구원 안에 있으면 질투심이 원래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 밖에 있으면 질투가 많습니다. 이제 자매의 난이 시작됩니다.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아들들을 내어 주세요!
이런 것입니다. 왜 언니에게만 아들을 낳나요? 난 아들을 못 낳나요? 하고
남편에게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어요.”
뭐예요? 나 죽는다! 객기입니다. 라헬은 성격이 못된 사람입니다.
그렇죠! 우리가 이제 말할 때, 나 죽어버릴꺼야! 이런 사람들은 아주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표현 자체가 쓰레기입니다.
야곱의 진노가 라헬에게 분노하였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에게서 태의 열매를 내지않게하신 하나님들을 내가 대신하겠느냐?”
영적인 분노가 진노입니다. 야곱은 믿음이 있으니까!
"나 때문이야? 그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인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60절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당신은 나의 여종 빌하! 그녀에게 들어가세요!
그녀가 나의 무릎 위에 낳아, 나도 그녀에게서 생산 됩니다.”
그녀가 자기 여종 빌하를 그에게 여자로 주었으며, 야곱이 그녀에게 들어갔습니다.
빌하가 잉태하였으며 야곱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이 말했습니다. “하나님들이 나를 판단하셨으며, 내 음성도 들으셨다. 그분이 내게 아들을 주셨다.” 그렇게해서 그녀가 그의 이름을 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 당신은 나의 여종 빌하! 그녀에게 들어가세요!
과거에 남자 아이는 돈 입니다. 노동력!
과거에 남자 아이는 지금과 달리 단순한 자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의 큰 힘입니다.
그래서 많이 낳으면 정복하고 승리하는 복중의 복이 과거에는 다산의 복입니다.
더 나아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것은 지금 아내로서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종 빌하를 대리모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자기 여종 빌하를 그에게 여자로 주었으며,
죄를 일으킨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간음죄 입니다.
물론 야곱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아니니까 죄 없다 할지라도 간음죄 입니다.
자기 아내 외에는 절대 관계하면 안됩니다.
“하나님들이 나를 판단하셨으며, 내 음성도 들으셨다.
라헬이 지금 얼마나 교만한가하면, 판단하다! 자신이 지금 옳다! 하는 것입니다.
내 음성도 들으셨다! 자신의 기도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단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단도 지옥이요. 단지파도 다 지옥 갔습니다.
뭐예요? 이런 더러운 성격 이런 악에서 무엇이 나오겠습니까?
단은 뱀입니다. 시험입니다. 남들을 빠뜨리는 것입니다.
라헬이 그렇습니다. 야곱에게 시험을 주고, 시험 주는 존재가 있습니다.
261절
라헬의 여종 빌하가 다시 잉태하였으며, 야곱에게 두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이 말했습니다. “하나님들의 역전으로, 내가 나의 자매와 함께 거슬러졌으며, 나도 할수 있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고 불렀습니다.
라헬의 여종 빌하가 다시 잉태하였으며, 야곱에게 두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제 여종으로 또 낳게 한 것입니다. 애기가 있으면 남편이 가까이 옵니다.
그리고 남편은 애기를 예뻐합니다.
남편이 자기에게 오게하고, 여자의 본분을 다하는데 있어서 승리를 느끼는 것입니다.
262절
레아는 자신이 낳는 것에서 멈춘 것을 보았으며, 자기 여종 실바를 데려왔으며,
야곱에게 그녀를 여자로 주었습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말했습니다. “갓이 추격하여 간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갓이라고 불렀습니다.
레아는 자신이 낳는 것에서 멈춘 것을 보았으며, 자기 여종 실바를 데려왔으며,
지금 라헬이 종을 통해서 아들을 얻게 되니까, 레아도 죄에 대해서 동화된 것입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말했습니다. “갓이 추격하여 간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갓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식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나이 76세에 하란에 옵니다. 7년 동안 연애 하였습니다.
83세에 결혼합니다. 7년 동안 라헬 위해서 또 섬깁니다. 그 기간 동안에 지금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식 간격이 3년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1년, 2년 간격 밖에 안됩니다.
왜요? 얼마나 경쟁이 심하면 빨리 이유하고 빨리 생산하는 것입니다.
물론 4명의 여자를 통해서 생산하였다해도, 3년 간격은 아닙니다.
12년 만에 11명을 낳습니다. 무엇을 원해서? 야곱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
그럼 생각할 것입니다. 남편 사랑 안하면 어때! 그런 것은 일단 인간이 아니죠!
인간의 본능 가운데 사랑받는 인간의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왜 경쟁합니까? 사랑 받으려고 합니다.
지금 이들의 경쟁심은 남편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매가 서로 원수! 적입니다.
쌍둥이 야곱과 에서의 삶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은 써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왜 경쟁했느냐? 이삭에게 사랑 받으려고! 거기에 대해서 에서가 승리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야곱이 승리를 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든지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경쟁하는 것입니다.
263절
레아의 여종 실바가 두 번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았습니다.
레아가 말했습니다. “딸들이 나를 복되다하였으니, 나의 복됨!”
그녀는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1년 간격으로 계속 낳는 것입니다.
264절
르우벤이 밀의 추수의 기간에 나갔으며, 들에서 사랑약초를 발견하였으며,
그것들을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들고왔습니다.
라헬이 레아게게 말했습니다. “바라건대, 당신 아들의 사랑약초를 내게 주세요!”
그녀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의 남자를 데려간 것이 조금이냐?
네가 내 아들의 사랑약초도 가져가겠느냐?”
라헬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 아들의 사랑약초 대신, 밤에 그가 당신과 함께 동침합니다.”
밀의 추수의 기간에 나갔으며,
추수! 추수는 구원입니다. 이제 어떤 기한이냐? 이때가 한 7년이 지나갔을때 입니다.
야곱의 나이 90세 되었을때 입니다.
들에서 사랑약초를 발견하였으며, 그것들을 자기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들고왔습니다.
사랑약초 무엇이죠! 이것은 성기능 강화제입니다.
르우벤은 벌써, 어릴 때부터 성에 눈을 떠서 사랑약초를 캐온 것입니다. 아주 굉장합니다.
성에 눈이 떠지니까 나중에는 빌하와 성관계를 맺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됩니다.
라헬이 레아게게 말했습니다. “바라건대, 당신 아들의 사랑약초를 내게 주세요!”
이제 라헬이 레아에게 그 약초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나의 남자를 데려간 것이 조금이냐? 네가 내 아들의 사랑약초도 가져가겠느냐?”
레아가 라헬에게 너는 매일 야곱과 함께 잠을 자고 있잖아! 지금 야곱은 라헬하고만 잠을 잡니다.
야곱이 레아하고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레아가 라헬에게, "너 지금 내 남편과 매일 같이 자면서 그것도 부족하니!
이것도 빼앗아 가려고?" 서로가 경쟁심이 있는 가운데 레아 입장에서는 남편을 빼앗긴 것입니다.
약초는 성기능 강화로 부부생활을 통해서 환희를 느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자녀출산 경쟁만이 아닌 부부생활의 성적만족감으로도 경쟁하는 것입니다.
라헬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 아들의 사랑약초 대신, 밤에 그가 당신과 함께 동침합니다.”
라헬이 레아에게, "오늘밤 야곱과 함께 잠을 자세요! 내가 양보할께요!"
레아는 굶주린 것입니다. 야곱이 라헬만 사랑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삭이 늘 에서만 사랑합니다. 에서는 지옥 갔습니다.
야곱이 라헬만 사랑합니다. 야! 정말 미치겠습니다! 지금 이삭과 야곱이 너무나 판박이입니다.
너무 똑같습니다. 야곱도 아빠의 사랑을 원했는데, 사랑을 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불쌍하니까 엄마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해줍니다.
이삭이 에서가 사냥물을 잘 해온다고 에서만 칭찬해주고, 에서만 좋아했는데 에서는 지옥 갈 자였습니다. 지금 똑같습니다. 레아와 라헬이 경쟁하는데 라헬은 성격도 더럽고 좋지 않고 지옥 갔습니다.
단지 외적으로 예쁠 뿐입니다. 지금 야곱이 라헬만 좋아하는데 어느 정도냐?
레아하고는 아예 잠을 자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헬이 하룻밤 자게 해줄게 하는 것입니다. 비참합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과거에 야곱의 마음일 것입니다. 사람은 경쟁에서 지게 되면 참 비참합니다.
왜 교회가 부흥되려고 애를 쓸까요? 회사에서 진급을 힘쓸까요? 왜 돈을 많이 벌려고 애를 쓸까요?
왜 학교에서 1등을 하려고 할까요? 왜 자식을 많이 낳으려고 할까요? 전부다 인간은 다 욕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패배자 되면 그때는 마음에 절망감이 옵니다.
누가 승진을 했네! 누가 집을 샀네! 누가 돈을 많이 벌었네!
난 이게 뭐야! 마찬가지로 패배자는 마음이 아픕니다.
레아가 지금 라헬만 잘되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야곱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265절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들어왔으며, 레아가 그를 맞이하려고 나왔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내 아들의 사랑약초로 사고 샀으니 내게 들어오세요.”
그가 그 밤에 그녀와 함께 동침하였습니다. 하나님들이 레아에게 들으셨습니다.
그녀가 잉태하였으며 야곱에게 다섯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말했습니다. “내가 나의 여종을 나의 남자에게 준 나의 댓가를 하나님들이 주셨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들어왔으며, 레아가 그를 맞이하려고 나왔으며 말했습니다.
원래는 항상 매일같이 라헬이 맞이하려고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집에서 레아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내 아들의 사랑약초로 사고 샀으니 내게 들어오세요.”
레아가 하룻밤 자는데 그 귀한 약초를 판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자기도 똑같은 부인인데 이게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이 에서만 좋아하고 야곱을 천시하는 것입니다.
이 야곱이 과거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에서와 경쟁을 하였는데 그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그 밤에 그녀와 함께 동침하였습니다. 하나님들이 레아에게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266절
레아가 다시 잉태하였으며 야곱에게 여섯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레아가 말했습니다. “하나님들이 내게 선한 선물을 선물하셨다.
내가 나의 남자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번에는 그가 나와 동거한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나와 동거한다.
레아가 점점 좋아지면서 여섯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날 때마다 레아가 계속 올라갔는데 드디어 이제 야곱과 자주 잠을 자는 것입니다.
267절
후에, 그녀가 딸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이름을 디나라고 불렀습니다.
디나! 여자입니다.
레아가 못생기고 그리고 여러 가지로 연약한데 자녀를 통해서 위상이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기의 상처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레아가 천국에 왜 갔을까?" 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때로 경쟁에서 질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경쟁에서 질 때 우리는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 슬픔을 통해서 기도가 됩니다. 그 슬픔이 우리에게 기도를 낳는 것입니다.
인간은 잘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잘되면 교만해집니다. 라헬처럼 방자해집니다.
그런데 레아는 그런 남편의 학대와 업신여김과 소홀히 여김을 당하면서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명을 낳은 것입니다. 구원입니다.
레아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알았느냐?
남편 사랑도 알았겠지만,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 레아가 경쟁을 통한 패배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승리가, 승리가 아닙니다. 세상에 번성이, 번성이 아닙니다.
세상의 번성과 승리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 우리에게 영적인 패배를 줍니다.
누굴까요? 라헬입니다. 라헬이 영적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268절
하나님들이 라헬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들이 그녀에게 들으셨으며 그녀의 태를 여셨습니다.
그녀가 잉태하였으며, 아들을 낳았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들이 나의 모욕을 모으셨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불러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다른 아들을 거듭하게하신다.”
“하나님들이 나의 모욕을 모으셨다.”
라헬은 남편을 다 차지하고도 모욕 받았다고 합니다. 아주 악한년! 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다른 아들을 거듭하게하신다.”
라헬이 처음 난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낳으면 계속 낳게 됩니다.
하지만 라헬이 곧바로 낳았을까요? 못 낳았습니다.
"언제 낳았느냐?" 하면 나중에 가나안에 가서 낳게 됩니다. 그 이름이 베냐민입니다.
그런데 그때, 라헬은 산고로 죽게 됩니다.
레아는 경쟁하다가 회개하면서 돌아섰습니다.
라헬은 끝까지 경쟁하며 끝까지 질투하고, 시기하고,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그 영과 영이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질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시기심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믿으면서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믿으면서 변화되지 않는다? 지옥입니다.
많은 분들은 교회 다니면서 예수님의 보혈로 천국 간다고 합니다. 웃기지 마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죄가 끊어져야 합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여전한 경쟁심 심지어 언니에 대해서 모욕한다고 하니 아주 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낳다가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가기 직전에 길에서 야곱이 묻어 버립니다.
반대로 레아는 야곱의 정식 부인으로 드디어 헤브론 막벨라 굴에 묻히게 됩니다.
누가 부인이냐? 하는 것입니다. 둘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라헬은 정식이 아닌걸로 판명된 것입니다.
에서가 야곱의 경쟁 상태에서 에서는 떨어져 나갑니다. 진것입니다. 야곱이 승리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변화되지 않는 에서! 변화되지 않는 라헬은 끊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누가 버림 받느냐 변화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레아는 그 속에서 변화되어서 일곱명을 낳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라헬은 나중에 죽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애 낳을 때, 죽는 것은 엄청 힘든 것입니다. 엄청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입니다.
269절
라헬이 요셉을 낳게 되는 대로,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보내십시오! 나는 내 땅 내 지역에 가렵니다.
내가 당신을 섬겨서 얻은 내 여자들 그리고 내 자녀들을 주세요!
내가 당신을 섬긴 나의 섬김을 당신이 아시니, 나는 가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왜 갔을까요? 원래는 라헬을 얻으려고 7년만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났을까요? 사실은 12년쯤, 지난 것입니다.
12년이 지난 후에도 야곱이 말을 해도 그 말이 라반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왜요? 라반이 기독교인인데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지옥 갔습니다.
지금 12년 동안 봉사했는데, 지금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가서 기간이 지났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먹히는 것입니다.
드디어 야곱이 결단한 것입니다. 언제! 요셉을 낳을때요. 이제 90세를 넘어 6년쯤 지났을 것입니다.
그동안 야곱은 참은 것입니다. 계속 허락해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요셉을 낳았을 때, 야곱이 드디어 결단한 것입니다.
“나를 보내십시오! 나는 내 땅 내 지역에 가렵니다.
내가 당신을 섬겨서 얻은 내 여자들 그리고 내 자녀들을 주세요!
내가 당신을 섬긴 나의 섬김을 당신이 아시니, 나는 가렵니다.”
이런 것입니다. 장인어른! 아내와 자녀들을 주세요!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
아니 자기 자녀와 부인들을 왜 달라고 합니까? 왜일까요? 라반이 야곱에게 갑질한 것입니다.
결혼하고 출가하면 끝난 것인데, 왜 아내와 자녀를 달라고 합니까? 지금 라반이 횡포를 부린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지옥에 갈까요? 인간의 죄는 지옥의 사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해져야 하는데 선해지질 않는 것입니다.
이제 더 섬겨주었는데도 돈을 더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 이제 가게 해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할까요? 그동안 처가살이 하면서 얻은 것은 아내 두명과 자녀들 밖에 없습니다.
이제 가겠다는데 보내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결단하고 말한 것입니다.
270절
라반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바라건대, 다만 내가 네 두눈에 은혜를 얻을 것이다.
내가 계시받았는데, 여호와께서 너 때문에 나를 축복하셨다.”
그가 말했습니다. “너는 너의 댓가를 내게 낙인찍어라! 내가 주려한다.”
그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섬긴 것 그리고 당신의 가축이 나로 있게된 것을 당신이 압니다. 저의 전에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조금이었는데, 그것이 많아져 확장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발걸음으로 당신을 축복하셨습니다. 지금, 어느때 나도 나의 집을 만듭니까?”
“바라건대, 다만 내가 네 두눈에 은혜를 얻을 것이다.
가 계시받았는데, 여호와께서 너 때문에 나를 축복하셨다.”
이제 너 나좀 봐줘! 내가 계시 받았는데, 기독교인이니까 계시 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보내지 않은 것은 내 뜻이 아니었어!
하나님 뜻이야! 하나님께서 너를 보내지 말래!"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 때문에 나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 하셨어! 그러니까 너 가면 안돼!"
“너는 너의 댓가를 내게 낙인찍어라! 내가 주려한다.”
그래 그동안 네가 더 일한 것을 알고 있어!
"그럼 네가 네가 네 것으로 인을 찍어! 그리고 네 것으로 가져! 그렇게 하면 돼!" 하고,
야곱에게 그동안 더 일한 댓가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뭐하기 위해서요? 가지 못하게 하려고!
만약 지금 보내는 것이 불가능한데, 라반은 일꾼이 없습니다.
라반은 나이를 먹었습니다. 고용할 능력이 없으니까 일을 시키려고 야곱에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섬긴 것 그리고 당신의 가축이 나로 있게된 것을 당신이 압니다.
저의 전에는, 당신에게 있는 것이 조금이었는데, 그것이 많아져 확장하였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당신을 섬겨서 숫자가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발걸음으로 당신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죠! 야곱이 온 다음부터,
그 가난한 라반의 집이, 목동이 없어서 딸에게 목동을 시킨 그 라반의 집이 부유케된 것입니다.
지금, 어느때 나도 나의 집을 만듭니까?”
야곱은 집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부인과 자녀들의 가장인데, 처가살이 하면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지금 두 아내의 경쟁심의 틈새로 살아가야 하고, 갓 낳은 애기들 속에서 살아가야하고,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야 하고, 더 나아가서 라반의 갑질이 있던 것입니다.
나도 내 집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남자에게는 독립심이 있습니다.
남자는 누가 위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한탄하는 것입니다.
271절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야곱이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위해 행하신다면,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마세요.
나는 이 일로 돌아가렵니다.
내가 당신의 양염소떼를 사육하고 지키며, 그곳에서 양들 중에 점있거나 점새겨진 모든 어린양과,
모든 검은 어린양 및 염소들 중에 점새겨진 것과 점있는 것을 빼내기 위해,
당신의 모든 양염소떼를 오늘 통과합니다. 그것이 나의 댓가일 것입니다.
내일 나의 의가 나를 위해 드러날 것인데,
당신이 당신 앞의 모든 나의 댓가에 왔는데, 염소들 중에,
점있거나 점새겨지지 않은 것 및 양들 중에서 검지 않은 모든 것,
그것은 내게 도둑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반이 말했습니다. “보아라! 그렇다면, 네 얘기들이 되게하라.”
“내가 네게 무엇을 줄까?”
라반이 지금 그럼 내가 네게 무엇을 주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위해 행하신다면,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마세요.
아니 줄 것 없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동안 계약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을 일을 했는데, 그 다음에 일한 것은 계약하지 않고 그냥 일해준 것입니다.
야곱은 양심적입니다. 그냥 일해준 것입니다.
또 당신이 '계시 받았다!' 하였으니 '있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나는 이 일로 돌아가렵니다. 내가 당신의 양염소떼를 사육하고 지키며,
그곳에서 양들 중에 점있거나 점새겨진 모든 어린양과,
모든 검은 어린양 및 염소들 중에 점새겨진 것과 점있는 것을 빼내기 위해,
당신의 모든 양염소떼를 오늘 통과합니다.
이제 당신의 양염소 가운데 점박이만 가질께요.
그럼 생각할 때 야곱도 돈 벌었네!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양염소 가운데 점박이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난 받을 마음 없습니다. 점박이는 가치가 없습니다. 점박이는 털도 쓰기 어렵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선한 사람이냐? 야곱은 계약 안했으니까 내가 그냥 일해준 것으로 할께요.
하지만 나도 요만큼만 얻을께요. "점 있는 걸로 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그때 라반은 좋아했을 것입니다. 야! 돈 벌었다! 할 것입니다. 지금 20년이 지나갔습니다.
14년은 아내들 때문에 일했습니다. 6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그냥 봉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수확은 점박이 양염소 밖에 없습니다.
누가 딸을 팝니까? 야곱은 지금 라반의 딸을 산 것입니다.
누가 딸을 삽니까? 그냥 결혼하지요. 야곱이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입니다.
내일 나의 의가 나를 위해 드러날 것인데,
나의 의가! 야곱은 구원에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구원은 의가 드러나지는 것입니다.
의가 드러나지는 것! 이것이 구원인 것이지, 구원 받았다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의가 지배할 때, 그것이 구원입니다. 지배하지 않으면 구원이 아닙니다.
라반도 똑같이 시작했지만, 라반은 더 악해진 것입니다.
야곱은 더 선해진 것입니다. 구원에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현재 은 구원 단계입니다.
금 구원은 야곱이 100세가 되어서 얻어집니다.
내일 나의 의가 나를 위해 드러날 것인데, 당신이 당신 앞의 모든 나의 댓가에 왔는데,
염소들 중에, 점있거나 점새겨지지 않은 것 및 양들 중에서 검지 않은 모든 것,
그것은 내게 도둑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점 없는 것이 왔으면, 이것은 도둑질입니다. 그렇죠! 야곱은 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안 봐도 더 가져오지 않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속이지 않습니다. 이익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일반사람들은 욕심이 많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훔쳐오기도 하는데,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보아라! 그렇다면, 네 얘기들이 되게하라.”
라반 입장에서는 지금 20년 동안, 공짜로 부려먹은 것입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그가 준 기프트는 점 있는 양 밖에 없습니다.
라반 입장에서 얼마나 행복했었을까요?
272절
그 날, 그는 자기에게 있는 흰 모든 것에서,
반점있거나 점개겨진 숫염소들 그리고 점있거나 점새겨진 모든 암염소들과,
양들 중에서 모든 검은 것들을 빼내었으며,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주었습니다.
야곱이 그와 자기 사이에 3일 길을 두었습니다. 야곱은 남겨진 라반의 양염소떼를 사육한 것입니다.
그 날, 그는 자기에게 있는 흰 모든 것에서,
반점있거나 점새겨진 숫염소들 그리고 점있거나 점새겨진 모든 암염소들과,
양들 중에서 모든 검은 것들을 빼내었으며,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주었습니다.
야곱이 드디어 점 있는 것들을 모아다가 자기 아들들! 좀 컸겠죠! 12살 10살이 있겠죠!
아들들에게 양을 치라고 주었습니다.
그와 자기 사이에 3일 길을 두었습니다.
라반과 자기 동물 사이에 3일 길 꽤 멀리 있습니다.
하룻길이 30키로미터 입니다. 양을 치기 위해서 꽤 멀리 이동한 것입니다.
야곱은 남겨진 라반의 양염소떼를 사육한 것입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양염소를 키우고, 점박이를 키우고, 야곱은 라반의 양염소를 키우는 것입니다.
왜? 라반은 목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의 양염소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273절
야곱은 푸른 플라타너스나무와 자작나무와 백송나무의 가지를 자기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는 가지들을 싸고있는 흰 껍질들 곧 흰 표면을 벗겼으며,
양염소떼가 마시러 오는 물의 구유들 곧 수로에, 벗긴 가지들을, 양염소암컷들과 마주하여 세웠습니다.
암컷들이 마시러 오는데 짝짓기하였습니다. 수컷들이 가지들을 향해 양염소암컷들과 짝짓기하였습니다. 양염소암컷들은 반점있는 것과, 점있는 것과, 점새겨진 것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푸른 플라타너스나무와 자작나무와 백송나무의 가지를 자기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는 가지들을 싸고있는 흰 껍질들 곧 흰 표면을 벗겼으며,
양염소떼가 마시러 오는 물의 구유들 곧 수로에, 벗긴 가지들을, 양염소암컷들과 마주하여 세웠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이제 점 있는 것은 야곱의 것이 되니까,
흰 나뭇가지를 벗겨서 무늬를 만들어서 세우는 것입니다.
수로를 만들어서 암양들이 물을 마실 때, 숫놈들을 풀어서 숫놈이 암양에게 올라탑니다.
그럴 때, 숫놈이 그것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점박이를 얻게하기 위한 야곱의 전략입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야곱이 20년 동안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안 것입니다.
야곱은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양염소 사육에 도가 튼 사람입니다.
암컷들이 마시러 오는데 짝짓기하였습니다. 수컷들이 가지들을 향해 양염소암컷들과 짝짓기하였습니다.
이제 숫컷들을 풀어놓아서 암양이 물을 마실동안, 짝짓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앞에 세워진 줄무늬 가지를 보게하는 것입니다.
양염소암컷들은 반점있는 것과, 점있는 것과, 점새겨진 것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점박이들이 낳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써서 만들었습니다.
야곱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혈통적으로 점박이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들어집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나중에 에서가 형제가 야곱을 죽이러 옵니다.
그때 재산을 몽땅 주게 됩니다. 앞으로 4년을 일하는데,
밤새 고생해서 짝짓기 시켜서 만들어 놓은 것들을 다 잃어버립니다.
인간의 비애입니다. 인간의 부요함, 명예, 인간의 잘되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번에 다 날라갑니다. 왜 날라갈까요? 이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럼 뭐가 있습니까?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욕심이 없는 사람 중에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야곱의 마음속에 요만큼 남아있는 것입니다. 정당한 욕심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무엇을 위해서는 구원을 위해서는! 야곱이 100세에 금 구원에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4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점박이들을 낳게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많은 재산들을 뺏기게 됩니다.
누구 때문에? 형제 에서의 욕심 때문에 빼앗기게 됩니다.
욕심은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심 단계에서 욕심을 배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점포를 얻으면서 권리금의 욕심을 갖고, 땅을 사면서 땅값 상승의 욕심을 갖습니다.
욕심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욕심은 크든 작든 전부다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욕심을 모두 버려야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할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도 성장하는데 구원 받았습니다. 은 구원입니다. 하지만 왜 금 구원이 안되는냐?
나머지 작은 욕심조차 없어져야 하는데 아직 남았기 때문입니다.
274절
야곱이 양들을 나누었는데, 그 양염소떼 앞에 반점있는 것과 검은 모든 것을 두었습니다.
그는 그 떼들을 라반의 양염소떼에서 자기에게 따로 있게하여,
라반의 양염소떼 곁에 있게하지 않았습니다.
짝짓기하는 모든 양염소떼는 매어지게 되었으며,
야곱은 가지들에서 양염소떼들을 짝짓기하도록 수로에 그것들의 두눈에 가지들을 두었습니다.
그는 피곤한 양염소떼에게는 두지 않았기에, 피곤해지는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으며,
매어진 것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 남자가 매우 매우 확장하였습니다.
많은 양염소떼와 여종들과 남종들과 수낙타들과 수나귀들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야곱이 양들을 나누었는데, 그 양염소떼 앞에 반점있는 것과 검은 모든 것을 두었습니다.
그는 그 떼들을 라반의 양염소떼에서 자기에게 따로 있게하여,
라반의 양염소떼 곁에 있게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연하죠! 점박이는 분리해서 다시 또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짝짓기하는 모든 양염소떼는 매어지게 되었으며,
그렇죠! 짝짓기 할 때 일반적으로 암컷들은 거부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야곱이 몸을 수로에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줄로 매는 것입니다.
교배사 들은 숫컷이 교배할 동안에 암컷을 붙잡게 합니다.
자연적으로는 암컷들이 거부해서 임신이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은 가지들에서 양염소떼들을 짝짓기하도록 수로에 그것들의 두눈에 가지들을 두었습니다.
그는 피곤한 양염소떼에게는 두지 않았기에,
이제 하다가 숫컷이 다가올 때 암컷이 막 주저앉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런 것들은 놔둡니다.
피곤해지는 것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으며, 매어진 것들은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암컷이 건강하면 잘 받아줍니다. 암컷이 약하면 싫어합니다. 야곱은 전문가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힘들어하면 매이지 않고 놔둡니다. 그리고 잘 견디면 교배를 성공시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암컷들은 보니까 점박이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것들은 점박이가 되고, 그리고 힘없는 것들은 약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지혜입니다.
하지만, 이 지혜는 인간적인 지혜이지 그래서 이것이 욕심인 것이지,
우리는 많은 경우에 욕심이 지혜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을 통한 지혜, 능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남자가 매우 매우 확장하였습니다.
많은 양염소떼와 여종들과 남종들과 수낙타들과 수나귀들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드디어 번성한 것입니다. 이제 4년 만에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부가 복일까요? 복이 아닙니다. 왜요. 이것 때문에 라반이 추격 합니다.
이것 때문에 에서가 찾으러 옵니다. 우리에게 돈이 있는 것이 복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어지면 번성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왜 잘됩니까? 애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으로 얻은 것은 나중에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합니까? 우리는 욕심을 버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비록 지혜가 없고 그리고 남보다 뒤쳐진다 할찌라도,
우리는 욕심이 없이 자기를 비울 때, 그때 구원이 옵니다.
구원이 존재하는데 예수님은 누구에게 오실까요?
죄를 떨쳐버리고 욕심을 버릴 때, 우리에게 임재 하셔서 우리를 다스립니다.
그래서 욕심이 있으면 절대 예수님은 우리 영에 임재하지 않습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왔을 때 예수님이 너의 재산을 팔아서 나눠주라고 할 때 욕심을 못버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욕심이 없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욕심이 전부다 있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자유가 옵니다.
그리고 번성과 성공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떠나가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인생의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만족에서 오는데 이 만족은 욕심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드디어 이 욕심을 통과하고 드디어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구원입니다. 이것을 통과한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때, 자기를 비울 때,
그때 구원이 오는 것이기에 정반대로 우리가 남을 도와주고 섬기고 주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30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