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8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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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8장 강해]
(제목 : 성전 건축의 서원)
242절
이삭이 야곱을 불렀으며 그를 축복하였으며, 그에게 명령하였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나안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오지 말라.
너는 일어나라! 너는 밧단-아람으로 너의 어머니의 아버지인 브두엘 집으로 가라!
너는 그곳에서 너의 어머니의 형제인 라반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와라!
전능자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시어, 너를 다산하게하시고, 너를 많아지게하시며,
너는 백성들의 총회가 될 것이다.
하나님들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네 체류의 땅을, 네게 상속하셔서,
아브라함의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
이삭이 야곱을 불렀으며
"에서가 저주를 받고 야곱을 죽이려고 하니까,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불러서, "아무래도 내 오빠의 집으로 숨으러 가야할 것 같다!
에서가 널 죽이려 하고 있어!" 라고 말하고,
남편 이삭에게는, "여보! 가나안의 딸들을 얻는 것이 좋지 않은것 같아요!" 하면서,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 하니까,
이삭이 "그렇다면 야곱을 보내야지!" 하고, 동의한 상태에서 또 다시 야곱을 부른 것입니다.
“너는 가나안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오지 말라.
성경에서 불신자와의 결혼은 항상 금기사항입니다.
금기는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영이 죽는 것입니다. 지옥가는 것입니다.
결혼은 엄청 중요합니다. 불신자와의 결혼은 지옥 선언입니다.
너는 일어나라! 너는 밧단-아람으로 너의 어머니의 아버지인 브두엘 집으로 가라!
이삭 자신도 아버지를 통해서 아내를 그곳에서 데려왔으니까,
이제 믿음있는 자를 원해서 부인의 아버지 집으로 가라고 한 것입니다.
너는 그곳에서 너의 어머니의 형제인 라반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와라!
딸들! 라반은 리브가의 오빠입니다. 몇 살일까요? 많습니다. 현재 야곱의 나이는 76세입니다.
이삭은 136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여자는 보통 20세 이하에 결혼 합니다.
리브가의 나이가 많으면, 116세 적으면, 110세입니다.
오빠 라반은, 라반은 가장 적게 말해도 110세입니다.
자! 라반의 딸들은 몇 살일까요? 라반이 90세에 낳았어도 20살이고, 70세에 낳았어도, 40세입니다.
그런데 레아가 나이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라반이 70세쯤에 낳아서 레아가 40세 일수도 있고,
동생 라헬은 나이가 훨씬 적을 수도 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너를 축복하시어,
이미 이삭이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계시를 통해서 며느리를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매' 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연애로 안됩니다. 중매는 세모입니다. 영매가 진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위해서 예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이 지금 기도해 보니까, 라반의 딸들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얻으라고 야곱에게 감동을 전한 것입니다.
너는 백성들의 총회가 될 것이다.
총회! 총회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이삭 한명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총회! 무엇이냐면 참 기독교인 숫자가 엄청 많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들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네 체류의 땅을,
가나안 땅 구원이죠! 어떤 기독교냐 구원을 주는 기독교입니다. 구원 안에 영생이 있지요.
영생의 기독교가 있는데 한명이 아니고 야곱을 통해서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몇 명 낳았습니까? 12명 낳았습니다. 그러면 몇 명이 천국에 갔습니까? 6명이 천국에 갔습니다.
굉장한 숫자입니다. 그리고 12명 그 민족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어집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구원과 영생, 그리고 계대입니다.
243절
이삭이 야곱을 보냈습니다.
그가 밧단-아람으로,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형제 아람족속 브두엘의 아들 라반에게 갔습니다. 에서가 보았는데,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였으며, 밧단-아람에서 여자를 데려오도록,
그곳으로 그를 보내었으며, 또한 그를 축복하고,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가나안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오지 말라.” 라고 명령하여,
야곱이 그의 아버지에게와 그의 어머니에게 들었으며, 밧단-아람으로 간 것입니다.
아람족속 브두엘의 아들 라반에게 갔습니다.
원래 히브리 민족입니다. 아람어를 썼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브두엘이 구원 상실된 것입니다.
라반은 모릅니다. 문법상 아람 족속을 꾸미는 것은 브두엘을 꾸미는 것입니다.
브두엘은 이미 끝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라반은 거듭난 단계에 있습니다.
나중에 라반도 아람족속이란 표현이 붙여지게 됩니다.
무엇이냐? 라반도 나중에 구원 상실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거듭난 가운데 있는 라반의 딸도 거듭났기 때문에 데려가는 것입니다.
에서가 보았는데,
에서가 보았을까요? 아니지요. 제가 볼 때, 에서는 없었고 에서의 부인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까 에서가 없었을 때, 불렀을 것입니다.
부인들이 시아버지인 이삭이 축복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너는 가나안의 딸들에서 여자를 데려오지 말라.”
지금 예언은 길었는데, 다 잊어버렸습니다. 가나안의 부인들이 앞의 내용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들어보니까 "가나안에서 부인 데려오지 말라!" 하는 말이 들리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의 아버지에게와 그의 어머니에게 들었으며, 밧단-아람으로 간 것입니다.
이 말을 에서에게, 부인들이 자기들의 남편이니까, 전달한 것입니다.
244절
에서가 보았는데, 자기 아버지 이삭의 두눈에 가나안의 딸들이 악한 것입니다.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갔으며,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자기에게 여자로, 자기 여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에서가 보았는데, 자기 아버지 이삭의 두눈에 가나안의 딸들이 악한 것입니다.
에서는 원래 이스라엘 총회를 얻었고, 장자권을 받은자였고, 천국 들어갈 자로 알고 있었는데,
야곱이 축복 받은 다음부터 이삭이 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내가 잘못 깨달았구나! 야곱이 천국! 에서가 지옥이네! 알고 보니까! 진짜 얘네들 악하네!" 하고,
가나안 딸들의 악함을 본 것입니다.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속하면 마귀가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불신자와의 결혼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식들은 마귀가 좋아 보이기 때문에, 투표할 때도 마귀를 찍는 것입니다.
지옥은 지옥이 좋습니다. 천국은 천국이 좋습니다.
이제 보니까 저것들이 악하네! 하고 이삭의 영이 깨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악하다고 보는 것은 선해야 보입니다. 악한 자는 악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갔으며,
"어! 어머니의 조카들을 데려오네!" 에서가 들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하면서 아버지의 형제 이스마엘의 딸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자기에게 여자로,
자기 여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느바욧은 장남입니다. 이스마엘이 12명을 낳았습니다.
에서가 이제 아버지에게 인정을 좀 받아야하겠는데, 가나안의 여자들을 싫어하니까,
"아버지 형제인 이스마엘에게서 부인을 데려와야겠다!" 한 것입니다.
지금 이삭이136세 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151세입니다.
이스마엘이 40세에 결혼합니다. 그럼 마할랏은 몇 살입니까? 원 부인에게서 낳았을까요? 아닙니다.
이스마엘이 12명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분유를 먹이지 않고 모두 젖을 먹였습니다.
젖을 먹이면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옥시토신은 자궁 수축을 도와주고 그리고 배란 억제를 일으킵니다.
젖 먹일 동안은 배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젖 먹일 동안은 베란이 되지 않아서 임신이 안됩니다.
그래서 과거에 짧으면 3년, 길면 5년 터울이었습니다.
이제 봅시다. 12명 낳는데 몇 년 걸립니까? 36년 걸립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이 얻은 12명이 한명의 부인에게서만일까요? 그럴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대부분 여자 결혼 나이는 20살 이하입니다.
이제 이스마엘이 나이가 들었어도 첩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할랏은 첩을 통해 이스마엘이 낳았을 것입니다.
마할랏 이름의 뜻은 노래입니다. 노래를 잘하고 기쁩니다.
이제 에서가 머리를 굴린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아주 혈통 좋은 이스마엘 후손에서 아주 노래를 잘하는 아주 명랑한 사람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상속을 받기 위해서 데려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 쪽이 좋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쫓아낸 자입니다.
'쫓아내다!' 무엇입니까? 영적인 관계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가 볼 때는 친척이니까 데려온 것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리브가 쪽은 아직 거듭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 쪽은 생명이 없는 가짜 기독교입니다. 가짜에서 데려온 것입니다.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자기에게 여자로, 자기 여자들에게 데려왔습니다.
에서의 부인들은 몇 살입니까? 자기 나이가 76세! 여자들은 보통 20세 아래니까, 56세 라고 칩시다.
20세 어린 여자를 데려와서 자기 부인들에게 "교육 좀 잘 시켜!" 하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245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나갔으며, 하란으로 갔습니다.
그는 한 장소를 만났으며, 그곳에서 숙박하였는데, 태양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장소의 돌들을 가져왔으며, 자기 머리맡에 두었으며, 그 장소에 누웠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나갔으며,
브엘세바는 영생의 장소입니다.
하란으로 갔습니다.
하란은 메소포타미아로 나홀이 사는 곳, 데라가 살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는 한 장소를 만났으며,
'한 장소를 만나다!' 이제부터는 약간 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올 때, 벧엘과 아이 사이에 거하였습니다.
아주 으슥한 곳입니다. 거기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벧엘은 성이었습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갈 때, 어디로 갑니까? 당연히 도시로 가야합니다.
야곱은 "왜 도시로 가지 않았을까?"입니다.
무서워서. 아닙니다. 야곱은 기도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왜 그런 광야로 갔을까요? 왜 숙박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지 않고 왜 노숙했을까요?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하다보면, 사람 없는 곳이 좋습니다.
기도하다보면, 사람 없는 곳으로 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기도원들이 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 없는 곳에 이제 야곱이 밤새 기도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기도가 잘되는 광야를 지나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숙박하였는데, 태양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다가 보니까, 어두워진 것입니다.
광야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그가 그 장소의 돌들을 가져왔으며,
숙박을 해야 하는데 위험합니다. 야곱 때에는 짐승이 많았습니다.
다윗 때에도 사자를 죽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자가 있다? 동물이 많은 것입니다.
다윗 때는 곰도 나왔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황폐하지만, 이때는 동물이 굉장히 많고 숲이 울창할 때입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밑에 살림이 엄청 우거졌다고 증명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과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갔는데, 이제 어두워졌습니다.
자야 하는데 위험하니까, 돌들을 가져와서 얼굴과 몸 주변에 이렇게 쌓은 것입니다.
성경 번역한 것을 보면 돌베개라고 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오번역입니다.
'돌들'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돌들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돌들이 하나가 아닙니다. 머리맡과 주변에 쌓은 것입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요!
자기 머리맡에 두었으며, 그 장소에 누웠습니다.
자기 머리맡에! 모든 성경들이 이것을 베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베개 아닙니다.
돌들이고 그 돌들을 쌓아서 동물들이 덮치지 못하도록 예방한 것입니다.
사람이 얼굴이 노출되면 동물이 얼굴을 봅니다.
몸은 옷으로 가려졌지만, 얼굴은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잘 보입니다.
그래서 군인들도 수색할 때, 얼굴을 칠합니다.
달빛에 있을지라도 어둡게 하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얼굴과 손에 칠합니다. 분장을 합니다.
그래서 얼굴과 손이 안보이게 돌들로 가린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기도하다가 노숙하게 되었는데, 광야에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들어간 것입니다.
마을들은 너무 멀리 있고, 잠을 자고 가야하니까 잠깐 누웠겠지요.
246절
그가 꿈꾸었는데, 오! 사다리가 땅으로 서졌으며, 그 꼭대기가 하늘들로 접촉하였고,
오! 하나님들의 천사들이 그것을 올라가며 내려오는 것입니다.
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들이며, 이삭의 하나님들인 여호와이다.
네가 그 위에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준다. 네 자손이 땅의 흙같이 될 것이다.
너는 서쪽으로, 동쪽으로 북쪽으로 남쪽으로 흩어질 것이며,
토지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축복받을 것이다.
오! 내가 너와 함께하며,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킬 것이며, 이 토지로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게 얘기한 것을, 내가 반드시 행할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었는데,
왜 꿈을 꾸었을까요? 사람이 기도하면, 신령한 꿈을 꾸게 되어있습니다.
안하면, 개 꿈꾸게 됩니다. 개꿈은 우리의 자아나, 혼에서 나온 꿈입니다.
신령한 꿈은 영에서 나옵니다.
지금 거듭난 야곱은, 성령님이 안에 계시니까, 신령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오! 사다리가 땅으로 서졌으며,
사다리는 하나님과 교통입니다. 하나님과 드디어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 나이가 먹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없이 집에서 예배드리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들은 모든 구전된 말씀들을 배우고 살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보통 때도 많이 밖에 나갔던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속에는 과거가 들어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우연이 없습니다.
행동 속에는 전부다 과거가 있습니다.
야곱이 과거에 집에서 기도도 했겠지만,
야곱이 다른 친구들 집에 놀러가지 않고 분명히 숲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우발적인 행동 속에도 습관이 있습니다.
이제 과거에 야곱이 늘 집 주변에 있으면서 기도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야곱이 갑자기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이 늘 기도를 많이 했으니까, 드디어 습관적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든 것입니다.
사다리 교통입니다. 땅으로 서졌으며, 땅은 자연계입니다.
그 꼭대기가 두하늘로 접촉하였고,
하늘!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드디어 인간이 하나님과 접촉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 하나님들의 천사들이 그것을 올라가며 내려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무엇으로 올라갈까요? 우리의 기도를 들고 올라갑니다. 응답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처음이 아닙니다. 야곱은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 위기 때에 드디어 꿈에 보여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야곱의 삶입니다.
기도생활한 것이 꿈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드디어 여호와께서 위에 서계신 것입니다. 이제 음성이 들려옵니다.
저는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도 꿈속에서 음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꿈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물론 야곱은 얍복강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이 토지로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이다.
땅은 구원의 땅입니다. 네 자손들이 구원을 얻게 될거야!
왜냐하면, 내가 네게 얘기한 것을, 내가 반드시 행할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꿈에 말씀하시기를, "야곱! 너를 통해서 많은 구원이 일어나! 영생이 일어나!
넌 쓰임받을 것이야!" 라는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넌 지금은 떠나있지! 다시 올거야! 잠시 떠나 있는것 뿐이야!"하고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247절
야곱이 자기 잠에서 깨어났으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장소에 분명히 계심이여! 내가 알지 못했다.”
그가 두려워하였으며 말했습니다. “이 장소가 얼마나 두려워지는가?
이 장소는 반드시 하나님들의 집이며, 하늘들의 문인데, 이것이 없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일어났으며, 자기 머리맡에 두었던 돌을 가져왔으며,
그것을 기둥으로 두었으며,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는 그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는데, 그 성의 처음의 이름은 원래 루스였습니다.
야곱이 자기 잠에서 깨어났으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장소에 분명히 계심이여!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그 말일까요?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장소의 중요성을 압니다.
저는 기도처가 수 백군데 있었습니다. 저는 눈만 뜨면 기도했습니다. 저는 평생 기도했습니다.
한국에 안간 곳이 없습니다. 기도는 장소가 있습니다.
어떤 장소이냐? 임재의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에 충만하시지만, 우리를 만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야곱이 지금 처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많이 해봤습니다.
'어! 내가 성령에 이끌려서 이곳에 왔네! 야! 이 장소는 보통 장소가 아니네!'
왜요? 신령한 꿈을 꾸었으니까! "어! 이 장소에 계심이여 내가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까, "내가 하나님의 인도로 이곳에서 기도했구나! 잠을 잤구나!" 하고,
드디어 상황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가 두려워하였으며 말했습니다. “이 장소가 얼마나 두려워지는가?
영적인 임재에 따른 두려움입니다. 지금 잠을 잘 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어젯밤에 기도가 잘되었습니다. 꿈을 깬 다음에 보니까, 임재로 충만해진 것입니다.
영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소는 반드시 하나님들의 집이며,
집! 성전입니다. 어! 이곳이 성전이네! 성전에 원래 원어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늘들의 문인데, 이것이 없다.
천국가는 문입니다. 성전은 천국가는 길입니다. 영생의 문이 교회입니다. 성전입니다.
이제 오! 여기가 성전이네! 천국가는 문이 여기였네!
이것이 없다. 건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기도생활하면서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왜요. 때론 나무 옆에서 기도하기도 하고, 돌 앞에서 기도하기도 했는데,
항상 기도할 때, 무엇이 없느냐?
나도 성전이 있었으면, 나도 기도처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곳에서 기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원함이 있던 것입니다.
지금 "이곳이 성전이었네!" 뭡니까? 성전에 대한 사모함입니다.
저는 기도하려고 안가본 예배당이 없습니다. 항상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기도할 장소가 많지 않고, 제가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오는 간절한 마음, 저도 그런 성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목회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저도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참 좋은데, 늘 원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머리맡에 두었던 돌을 가져왔으며, 그것을 기둥으로 두었으며,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돌은 단수입니다. 이제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기둥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렇죠! 돌 베개를? NO! 우리가 큰 것으로 베고 잡니까? 말도 안됩니다.
베개는 얕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돌이 또 베개처럼 생겼습니까? 아닙니다.
돌은 기둥! 큰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세웠어요. 그리고 고정시켰을것입니다.
왜일까요? 표시해서 나중에 오려고!
기둥을 세우고, 꼭대기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기름을 가지고 다니나요? 과거에는 기름이 의약품으로 쓰였고, 기름을 많이 소유했습니다.
왜 부었을까요? 기름은 성령님! 제 3 위의 성령님이나 또는 예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장소는 성전!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곳은 임재하는 곳이야! 하고 성전의 기초를 쌓은 것입니다.
그것이 머릿돌 세운 것입니다.
그 장소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는데, 그 성의 처음의 이름은 원래 루스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입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갔을때도,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세웠는데,
애굽에 갔다가 와서 또 벧엘과 아이 사이에 거합니다.
벧엘은 성전입니다. 머무는 곳입니다.
루스! 루스는 과거 이름인데 루스는 아몬드입니다.
등잔대에 아몬드 꽃의 문양이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어떤 성전이냐? 구원의 성전입니다.
나중에 야곱이 들어왔을 때, 세겜 성에서 딸 강간 당한 다음, 벧엘로 와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물론 성전은 못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야곱은 지금과 달리 구원 안에 있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130세까지 그가 구원 안에 있었는데,
가나안 땅에 있는 동안에, 야곱 때문에 자녀들이 드디어 거듭납니다.
요셉부터 거듭납니다. 요셉이 최초입니다. 채색옷을 입게 됩니다.
벧엘이라는 장소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중에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그때부터 야곱은 구원자로서 거듭남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애굽에 가서 6명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이제 성전의 모양은 없었지만, 그러나 구원속으로 인도하는 이것이 진짜 성전입니다.
성전은 예배 터 맞습니다. 하지만, 성전은 예수님이 거한 구원 받은 자가 성전입니다.
이제 야곱이 구원 받고, 자녀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쓰임받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은 2가지 의미입니다. 내가 구원받고, 남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이루어집니다.
이 돌기둥 이것은 사라졌지만,
하지만 야곱이 기둥처럼 먼저 자신이 예수님의 임재 구원에 이르게 되고,
남들도 구원에 이르도록 쓰임 받으니까 진짜 성전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일이 24년 뒤에 일어납니다.
248절
야곱이 서원을 서원하여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들이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진행하는 이 길에서 저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의복을 제게 주시고,
제가 평안히 저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면, 여호와께서 제게 하나님들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둔 이 돌이 하나님들의 집이 되며,
저는 당신이 제게 주시는 모든 것을 당신께 십일조하고 십일조합니다.”
“만약 하나님들이 저와 함께 계셔서, 제가 진행하는 이 길에서 저를 지키시고,
먹을 빵과 입을 의복을 제게 주시고, 제가 평안히 저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면,
갈 때,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왜요? 야생동물들이 많고 또 부족국가들 지나가야 하며, 남들에게 죽을 수 있는데,
그 길은 1200킬로입니다.
그 길을 가야하는데, 그 위험성!
거기서 또 아내를 데리고 돌아와야 하는데, 이런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제게 하나님들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둔 이 돌이 하나님들의 집이 되며,
이제 성전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당연히 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배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통해서 자녀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배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church는 성도들의 모임, chapel 예배당입니다.
우리는 영이 있죠! 몸이 있죠! 붙은 것입니다. 뗄 수 없습니다.
이제 야곱은 진짜 구원의 성전을 만들고, 자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데,
그의 아들 가운데 레위자손들이 드디어 예배 인도자로 쓰임받게 됩니다.
저는 당신이 제게 주시는 모든 것을 당신께 십일조하고 십일조합니다.”
십일조는 백성이 레위인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왜 합니까? 거듭남으로 인도하니까!
레위인은 제사장에게! 제사장은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으로 인도하는 곳에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달리 세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없죠! 왜 관심이 하나님께 있으니까! 기도가 좋은 것이고 말씀이 좋은 것입니다.
에서는 세상에서 성공했지만, 야곱은 그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소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임재가 좋고 기도가 좋은 것입니다. 야곱은 예배가 좋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이 삶입니다. 명예가 삶이고 돈이 삶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명예나 돈이나 세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평생을 왜 기도했을까요? 나는 좋아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좋습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무엇을 좋아합니까? 애인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연예질을 좋아해요.
사람들은 돈을 좋아합니다. 에서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대한 꿈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제목이 “성전 건축의 서원” 입니다.
사람들은 서원할 때,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서원 할 때, 장수나 자손을 놓고 기도합니다.
야곱은 기도할 때 성전을 기도합니다. 왜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야곱이 왜 위대하게 쓰임 받았을까요?
야곱은 기도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인데, 하나님과의 만남이 인생의 목표이고 즐거움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성전의 꿈을갖지요.
에서는 호리족속을 정복하고 왕이 됩니다. 세상 사람은 세상에서 왕 되기를 좋아합니다.
야곱은 영적인 꿈을 가진 것입니다.
성전건축의 이 서원은, 이 소원은, 이 꿈은, 이것은 기독교인의 마땅한 꿈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살 사람들입니다. 땅에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썩어질 것들을 거두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이방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땅을 원합니다.
그래서 높은 위치를 원하고, 흥미를 원하고, 이 땅의 번성을 원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원하기에 그 원함 속에 성전건축의 소원대로,
드디어 그 자손들 가운데 성막과 성전이 지어지고,
그리고 12명의 아들을 통해서 드디어 총회가 이루어지고
예수님까지 이스라엘 역사에서 흩어짐 없이 쭈욱 한 민족이 기독교 국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나중에 또 얍복 강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기도를 좋아했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인데, 나중에 임종 전에는 안 보고도 맞춥니다.
얼마나 신령한지요! 12명의 인생과 후대들까지 다 예언합니다. 기도로 산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 할까요?
그깟! 좋은집, 좋은차, 좋은가정, 좋은학벌, 좋은회사, 세상 사람들입니다.
저는 한 가지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원합니다. 이것이 제가 살아온 길입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28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