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1장 강해]
를 시청해보시고,
과연,
개역개정 성경과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이 무엇이 다른가?
과연,
기존의 성경해석과
박경호목사의 성경의 해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한번
비교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 큐 !!!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1장 강해]
(제목 : 지옥가는 유사기독교와 달리 천국갈 것 같은 유사구원 )
150절
여호와께서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헤아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얘기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들이 아브라함에게 얘기하신 대로 그의 노년기에 그의 절기에,
사라가 잉태하였으며 그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자기에게 낳아진 자기 아들의 이름을이삭이라 불렀습니다.
사라를 헤아리셨습니다.
"사라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의 노년기에
영적인 나이입니다.
영적인 출산 거듭남입니다. 그 다은은 소년기, 장년기 20세 이상이며,
60세 이상은 노년기로 영적으로 영생급이고, 장로로 번역됩니다.
그의 절기에,
절기라고도 하지만 원어로는 만남입니다.
유월절기 유월의 만남입니다. 패스오버 넘어가다. 거듭남의 만남입니다.
오순절의 절기는 오순절의 만남 곧 구원의 만남입니다.
성막절기는 성막의 만남입니다. 영생으로의 만남입니다.
영생 이것은 노년의 만남입니다. 곧 성막절입니다.
그래서 성막 입구의 원어가 만남의 장막의 출입구로 되어있습니다.
성소를 상징하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구원이며,
지성소를 상징하는 성부 하나님과의 만남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영생이라는 그 만남까지 오는 과정, 이것이 거듭남의 과정입니다.
사라가 잉태하였으며
영생에 들어가면 구원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구원입니까? 온전한 구원입니다.
영생 곧 지성소가 대제사장입니다.
성소가 제사장입니다. 곧 금 구원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자기에게 낳아진 자기 아들의 이름을이삭이라 불렀습니다.
사라는 참교회입니다. 구원을 낳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느 터에 있습니까? 선지자, 사도의 터 위에 세워져야합니다.
선지자는 자기가 영생하면서 구원을 낳는 사람입니다.
사도는 영생을 낳는 또는 선지자를 낳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개념에서 이제 영생에 들어가니까 구원을 낳는 것입니다.
151절
아브라함은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8일의 아들, 자기 아들 이삭을 할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00년의 아들이었고, 자기 아들 이삭이 자기에게 낳아진 것입니다.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들이 나에게 웃음을 만드셨으니, 듣는 모든 자가 나와 웃는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노년기에 아들을 낳았기에,
‘사라가 아들들을 젖먹일 것이다.’라고 누가 그에게 전달할 것인가?”
명령하신 대로 8일의 아들, 자기 아들 이삭을 할례하였습니다.
본인이 안 것입니다.
마음의 죄가 있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에 할례를 발견했습니다.
간음죄를 짓다가 드디어 음란죄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할례는 바른 가르침입니다.
할례라는 것이 꼭 포피를 끊는 것이 아니라,
바른 가르침 곧 "죄를 지으면 천국 못가!"라는 바른 가르침입니다.
참 교회는 죄를 끊게 만듭니다.
영적으로 할례가 포피나 끊는 것이 아니라, 죄를 끊으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년의 아들이었고,
100년 물론 육의 나이이지만 영적으로 나이가 많은 것입니다.
자기 아들 이삭이 자기에게 낳아진 것입니다.
여기처럼 누구든지 다 구원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들이 나에게 웃음을 만드셨으니,
즐거움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즐겁겠습니까?
영생 앞에서 돈이 즐겁겠습니까? 즐거움은 영의 즐거움입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노년기에 아들을 낳았기에,
당연히 아브라함은 선지자급, 영생급이니까요!
‘사라가 아들들을 젖먹일 것이다.
거듭남을 낳은 입니다. 지금은 젖먹이이지만, 나중에는 영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이 사도급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그에게 전달할 것인가?”
육의 나이에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니까 누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152절
자녀가 커졌으며 젖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떼어지는 날에, 큰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애굽족속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그녀의 아들이 웃는 것을, 사라가 보았습니다.
그녀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이 여종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쫓아내십시오!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과 함께 곧 이삭과 함께 상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커졌으며 젖떼어졌습니다.
요즘은 분유가 있어서 1년 안에 젖을 뗄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삭 뒤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모유를 먹는데 보통 3년 걸립니다.
그래서 이유식 기간이 3년 터울이 많습니다. 아주 늦으면 4살까지 먹습니다.
현재 몇 살일까요? 만 3세 늦으면 만 4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때 젖을 뗀 것입니다.
이삭이 젖떼어지는 날에, 큰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영적으로 거듭나서 드디어 더 성숙한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애굽족속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이스마엘입니다. 몇살입니까? 아브라함이 85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100세에 낳았습니다. 15년 차이입니다. 18세, 19세입니다. 20세는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녀의 아들이 웃는 것을, 사라가 보았습니다.
잔치 때에 자기 아들 이삭을, 애기니까 비웃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을 때는 애기를 보고 웃습니다.
왜요? 한심합니다. 걷지도 못하고 똥 오줌을 싸고 한심합니다.
영의 나이가 이스마엘의 많습니다. 이삭은 영의 나이가 어립니다.
영의 나이가 많은 사람이 보면 한심합니다. 이것이 믿는거야! 한심해 하고 비웃는 것입니다.
누구입니까? 지금은 어립니다. 나중에는 영생에 도달됩니다.
지금은 이스마엘이 나이가 좀 많습니다. 말씀을 잘 압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지옥 갑니다.
왜요? 성장하다가 멈춥니다. 이스마엘은 끝나는 지점입니다.
지금 눈에 보일 때 애기라 할지라도 나중에 영적으로 창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볼 때 영적으로 어리고 미숙하니까 한심한 것입니다.
헌금도 제대로 못하고 기도도 제대로 못하고 한심하여서 비웃는 것입니다.
“이 여종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쫓아내십시오!
사라 참교회가 열받은 것입니다. 세상에 내 자녀를 비웃다니! 쫓아내라는 것입니다.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과 함께 곧 이삭과 함께 상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입니다. 여종! 종! 여종도 교회입니다. 하갈도 교회입니다.
참교회를 비웃습니다. 참교회가 조그맣고 왜소합니다.
반대로 이쪽은 커요. 창성해요. 그런데 보기에 형편없으니까 비웃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삭과 함께 상속
지금 상속을 믿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큰 아들입니다.
동생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어린데 상속을 기대합니다.
참교회 어머니 사라가 볼 때는 이삭이 상속자입니다.
예언대로 지금은 어리다 할지라도 나중에는 상속될 것을 알고 지금 분리되기 원하는 것입니다.
상속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누가 얻느냐 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스마엘이 얻을 것 같습니다. 왜요? 크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153절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이유를 인하여, 자기 두눈에 그 일로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하나님들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을 인해 네 여종을 인해 네 두눈에 근심하면 안된다.
사라가 네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을 모두 들어라! 이삭에서 자손이 네게 불리기 때문이다.
여종의 아들도 내가 민족으로 정하는데 그도 네 자손이기 때문이다.”
“소년을 인해 네 여종을 인해 네 두눈에 근심하면 안된다.
장년이 20세 이상 구원입니다. 소년!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종은 지옥 가는 교회입니다.
사라가 네게 말하는 그녀의 음성을 모두 들어라!
"사라편을 들어라!" 지금은 왜소하고 약한 교회이지만, 그러나 여기서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 교회가 지금은 장성하지만,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에서 자손이 네게 불리기 때문이다.
"진짜 자손은 이삭에게서 나와! 영생이 이쪽에서 나오기 때문이야!"
여종의 아들도 내가 민족으로 정하는데 그도 네 자손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도 번성을 줄거야! 거듭남의 세계를 주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안되지만 거듭남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자손과 그렇지 않은 자손이 둘이 있다는 것입니다.
154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일어났습니다. 그는 빵과 물의 가죽부대를 가져왔으며,
하갈의 어깨 위에 메우도록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게 자녀를 보내었습니다.
그녀가 갔으며 브엘-세바의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물이 가죽부대에서 마쳤습니다.
그녀는 한 수풀 아래로 자녀를 던졌습니다.
그녀는 갔으며, 화살을 쏘아 멀어지는 마주한 곳에 앉았는데,
그녀는 “내가 자녀의 죽음을 보면 안된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주한 곳에 앉았으며, 자기 음성을 높였으며 울었습니다.
브엘-세바의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자! 지금 장소는 브엘세바가 거주지입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제 광야입니다.
저 아래는 네게브가 있는데 그 사이일 것입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구원입니다.
곧 구원에 근접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스마엘이!
이스마엘 나이가 18살 - 19살입니다.
이제 구원에 근접했는데 이때부터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그녀는 갔으며, 화살을 쏘아 멀어지는 마주한 곳에 앉았는데,
이제 몸이 힘드니까, 자녀를 던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죽는 줄 알고 화살을 쏠 거리처럼 멀리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내가 자녀의 죽음을 보면 안된다.”
죽을 줄 아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세계도 거기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녀는 마주한 곳에 앉았으며, 자기 음성을 높였으며 울었습니다.
울었습니다. 교회가 운 것입니다.
155절
하나님들이 소년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들의 천사가 두하늘에서 하갈을 불렀으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하갈아! 네게 무슨 일이냐? 하나님들이 소년이 있는 그곳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으니,
두려워하면 안된다. 너는 일어나라! 너는 소년을 들어올려라! 너는 네 손으로 그를 붙들어라!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들이 소년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소년의 음성입니다. 하갈의 음성이 아닙니다. 하갈은 교회이구요!
거듭남의 교회에서 있는 성도입니다.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년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들의 천사가
그 교회도 하나님의 천사의 관여가 있습니다.
두하늘에서 하갈을 불렀으며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 세계에도 계시가 있습니다.
“하갈아! 네게 무슨 일이냐?
구원 상실을 주는 교회 영생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데 이름까지 부릅니다.
하나님들이 소년이 있는 그곳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셨으니, 두려워하면 안된다.
내가 음성 들었어! 두려워하지마!
너는 일어나라! 너는 소년을 들어올려라!
다시 소년을 힘을 주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교회가 영적인 힘을 줍니다.
거듭남의 교회도 힘을 줄수 있습니다. 우리는 착각하면 안됩니다.
은혜가 임하고 계시가 임하고 힘을 주기도 합니다.
너는 네 손으로 그를 붙들어라!
붙잡아 주기도 합니다.
내가 그를 큰 민족으로 정하였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교회도 장성하고 창대하게 합니다.
영생은 안됩니다. 번성하는데 구원과 영생이 안됩니다. 창대해집니다.
믿음으로 붙들어주고 채워주고 있습니다.
156절
하나님들이 그녀의 두눈을 밝아지게하셨습니다. 그녀는 물의 우물을 보았으며, 갔습니다.
그녀는 가죽부대에 물을 채웠으며, 소년에게 마시게하였습니다.
하나님들이 소년과 계셨습니다. 그가 커졌습니다.
그는 광야에 거하였으며, 화살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물의 우물을 보았으며,
물의 우물! 우물은 은혜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있습니다.
은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응답도 있습니다. 계시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도 있습니다.
그것이 영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그것 가지고 천국 믿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믿을 거예요! 왜요? 여기처럼 성령의 은혜가 임하고 죄씻음도 있습니다.
뜰의 5대 제사가 있습니다. 물두멍도 있고 다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하나님들이 소년과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있습니다. 참교회랑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커졌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그는 광야에 거하였으며
이제 브엘세바 광야에서 있었겠지요.
화살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화살! 화살은 짐승을 잡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수적인 부흥입니다.
거듭남의 세계는 짐승의 세계입니다.
소는 아닙니다. 양도 아닙니다. 짐승들 드디어 엄청 크게 커지는 것입니다.
157절
그가 바란의 광야에 거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애굽의 땅에서 여자를 그에게 데려왔습니다.
바란 광야! 지금 브엘세바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바란은 시나이반도에서 위쪽 엔시온 게벨 좌편 위쪽입니다. 상당히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부터는 멀어졌지만 광야는 커졌습니다. 바란 광야! 교회는 부흥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갈입니다. 교회입니다.
애굽의 땅에서
불신자입니다.
여자를 그에게 데려왔습니다.
이제 불신과 가까운 교회입니다.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불신과 가까운 교회로 번성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생을 모릅니다. 이것이 유사기독교입니다. 거듭날 수 있습니다. 부흥도 될수 있습니다. 응답도 있습니다. 회개도 있고, 다 있습니다. 영생이 안되는 교회입니다.
가나안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구원입니다. 멀어집니다.
점점 불신자와 가까워서 불신자랑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결국은 지옥 가는 것입니다.
다시 또 홍해로 이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거듭남에서 시작되었다가 다시 불신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사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왜 있을까요? 이것이 이 21장에서 말하는 논지입니다.
영생과 비교되는 것입니다. 누구와 비교됩니까? 이삭과 비교됩니다.
이삭은 별로 부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영생의 교회입니다.
사라가 영생의 교회 어머니입니다. 이삭은 영생합니다. 작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영생합니다.
158절
그 때에, 아비멜렉이 자기 군대의 장관 비골과 더불어,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네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들이 너와 함께 하신다.
지금 너는 나와 나의 자녀와 나의 손자를 속이지 않기를,
너는 이곳에서 하나님들로 내게 맹세되어라! 내가 너와 함께 행한 인자를 따라,
너는 나에게와 네가 체류한 이 땅에게 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아비멜렉이
아비멜렉은 블레셋 그랄 왕입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다가 돌아와서 헤브론에 갑니다.
그곳에서 예배자들과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다시 가뭄 때문에 블레셋으로 옵니다.
블레셋도 가나안 땅입니다. 구원입니다.
이제 좀 전에 얘기한 하갈은 구원이 아닙니다. 거듭남의 세계입니다. 당연히 천국에 못 갑니다.
또 다른 비교입니다.
“네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들이 너와 함께 하신다.
너도 하나님이 인정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같은 구원 안에 있는 것이니까
지금 너는 나와 나의 자녀와 나의 손자를 속이지 않기를,
뭡니까? 과거에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다고 할찌라도 유사구원 블레셋이 있는 것입니다.
구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아닙니다.
너는 이곳에서 하나님들로 내게 맹세되어라!
처음에 아브라함을 지도한 것입니다.
"너! 그러면 안돼! 여기서는 죄를 지으면 안돼!" 하고 지도하였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행한 인자를 따라, 너는 나에게와 네가 체류한 이 땅에게 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블레셋이라는 유사구원 속에 아브라함도 있었던 것입니다.
속임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결국 회개하였습니다.
159절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내가 맹세된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물의 우물의 이유들을 인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
너도 내게 알게하지 않았고, 나도 오늘 외에는 듣지 못했다.”
아브라함이 양염소떼와 소떼를 가져왔으며, 아비멜렉에게 주었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물의 우물의 이유들을 인하여,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자꾸 물을 누가 빼앗는 것입니다.
블레셋이 우물을 빼앗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습니다.
한때는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책망했습니다.
"속이면 어떻게 해! 부인을 부인이라고 해야지! 동생이라고 해!"
책망을 듣고! 아브라함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아브라함이 영적으로 더 높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으니까, "왜 그래! 왜 우물을 뺏어?"
“누가 이 일을 행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
다릅니다. 뭐가 다릅니까? 아브라함은 책망을 듣고 돌아섰습니다.
아비멜렉은 돌아서지 않습니다.
너도 내게 알게하지 않았고, 나도 오늘 외에는 듣지 못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발뺌하고 변명합니다. 악한자 입니다.
하지만, 구원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뭐가 다른 것입니까? 회개가 중단된 것입니다.
구원 안에 있다할지라도 회개해야 하는데, 중단되어서 영생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사구원입니다. 현재는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있습니다. 삶도 거룩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안되느냐! 책망 앞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선지자가 여호사밧에게 아합과 사귀지 말라고 했는데, 듣지 않아서 지옥 갔습니다.
구원 안에 있다 할지라도 선지자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이 듣지 않습니다. 유사구원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우습게 여깁니다. 성령의 음성을 부정하고, 우습게 여깁니다.
이제 반대로 아브라함은 성숙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양염소떼와 소떼를 가져왔으며, 아비멜렉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책망한 자인데, 거꾸로 재산을 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아브라함을 책망하기 때문입니다.
"너! 그럴수 있어? 내가 올바른데 왜그래?"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져주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우물을 빼앗았는데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책망이 잘못되었다고 보상해 준 것입니다.
160절
그들 둘이 언약을 맺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양떼의 일곱 어린 암양을 따로 세웠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왜 너는 이 일곱 어린암양들, 그것들을 따로 세우느냐? ”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이 우물을 판 증표로서, 네가 내게 있도록,
너는 일곱 어린암양을 내 손에서 데려가라.”
그렇게해서 둘이 그곳에서 맹세되었으므로, 그는 그 지역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맺었으며,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의 장관 비골이 일어났으며,
블레셋족속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양떼의 일곱 어린 암양을 따로 세웠습니다.
일곱은 진짜구원입니다. 이제 진짜구원, 가짜구원이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뭐가 진짜 구원입니까? 영생에 들어가면 진짜 구원입니다. 안되면 가짜구원입니다.
지금 구원이 임박한 18세-19세 하갈의 아들과는 분리되었습니다.
함께 구원 안에 있었는데, 구원이 다른 것입니다.
가짜구원은 은구원으로 유사구원이며 진짜 구원은 금구원으로 참구원입니다.
“내가 이 우물을 판 증표로
우물을 블레셋 사람들이 다 메웠습니다. 우물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블레셋에게는 그것이 임하다가 자꾸 막힙니다.
아브라함은 늘! 우물이 파지고 물이 나옵니다. 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진짜 구원 은혜가 항상 있습니다. 가짜구원 은혜가 말라버립니다.
이제 팠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또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네가 내게 있도록, 너는 일곱 어린암양을 내 손에서 데려가라.”
이것 다시 가져가! 대신 약속해! 이것은 내것이야! 빼앗지마! 브엘세바는 일곱 개의 우물입니다.
우물을 한 개 판 것이 아닙니다. 매일 회개하는 것입니다. 매일 죄에서 돌아섭니다.
가짜구원도 회개합니다.그러나 자꾸 회개가 막히고 회개가 온전케되지 않습니다.
책망을 잘 안 받습니다. 훈계를 안 받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가짜구원은 된 줄로 압니다.
우리는 책망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일곱 개 우물! 매일 하나님 앞에 회개 하는 것입니다. 매일 죄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구원입니다.
그렇게해서 둘이 그곳에서 맹세되었으므로, 그는 그 지역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브엘세바 일곱 개 우물입니다.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의 장관 비골이 일어났으며, 블레셋족속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브엘세바 이제 진짜 구원의 땅입니다.
이 위부터 가나안 땅입니다.
아래쪽은 유사구원의 땅입니다. 블레셋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회개하지 않는 구원입니다.
더 회개해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더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영생은 아직 멀리 있는데 내가 구원 받았다고 조금의 변화가지고 자랑합니다.
161절
그는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하나님 영원’이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블레셋족속의 땅에서 많은 날 들을 체류하였습니다.
에셀나무를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다가 아버지를 떠나서 하란까지 와서 머물다가,
75세에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옵니다.
애굽에 미혹되어서 갔다가 다시 블레셋에서 올라왔다가,
드디어 이제 진짜 구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이삭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진짜 구원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진짜 구원의 날이 성막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다 이 길을 거쳐야합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영생에 도달되어야 합니다. 일곱 개의 우물이 파져야합니다.
아브라함은 드디어 혼자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연합했습니다. 이제는 연합할 자가 없습니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더 외롭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영생의 길을 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영생의 길을 갈 때 혼자 되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유사구원을 분리시킵니다.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유사기독교와도 분리됩니다.
참구원 영생의 길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천국가기 때문에, 이 땅에서 고난당해도 영원 천국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사 기독교와 유사 구원이 가득차 있습니다.
딸랑 아브라함 한 명, 딸랑 이삭 한명 이것이 진짜 구원의 삶입니다.
영생을 상징하는 에셀나무를 심고,
나무의 성장과도 같이 영생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21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