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5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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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5장 강해]
(제목 : 벧엘을 떠남으로 온 징계들)
317절
하나님들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라! 너는 벧-엘로 올라가라! 너는 그곳에 거하라!
너는 네 형제 에서 앞에서 도망하던 너에게 보인 하나님께 그곳에 제단을 만들어라!
하나님들이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겜에 있는 남자들에게 할례 받게하고 3일째,
다 죽인 다음에, 도둑질한 다음에,
사방에서의 공격의 분위기 때문에 이제 두려워할 때입니다.
너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그렇죠! 우리가 죄를 지으면 앉은뱅이가 되고 눕게 됩니다.
일어나라 이제 다시 의를 행하라 의를 따르라 는 말입니다.
너는 벧-엘로 올라가라!
벧엘! 벧엘은 야곱이 서원한 곳이지! 명령은 아니었습니다.
서원이 무엇이냐? 서원은 우리의 생각이 아닙니다.
서원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가 나온 것이 서원입니다.
서원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어길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이 서로 약속을 합니다.
"어떻게 해!" "알았어!" 하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안 지키면 상처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디나가 강간 당했죠! 왜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받은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너! 서원했잖아! 성전짓기로! 벧엘에서!" 하고 야곱의 서원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너는 그곳에 거하라!
자! 야곱은 벧엘에서 성전 짓기로 서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너! 거기 거해야 돼!"
왜일까요? 그죠! 성전을 짓는 것, 예배처가 우리의 삶이 되어야죠!
우리의 예배처가 삶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돈 버는 곳으로 이사 갑니다.
학교가 가까운 쪽으로 이사 갑니다.
하지만 어디에 거해야합니까? 예배처에 거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너는 네 형제 에서 앞에서 도망하던 너에게 보인 하나님께
꿈에 보이셨죠! 야곱이 위기 때! 형이 죽이려고 하는 그 도망하는 위기 때, 나타나셨습니다.
그곳에 제단을 만들어라!
제단 뭐예요! 제단은 예배입니다. 번제단! 예배입니다. 떡상! 그것도 예배입니다. 향단도 예배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예배를 의미합니다.
뜰의 예배가 번제단 예배, 구원의 예배가 떡상의 예배,
그리고 지성소의 예배가 있는데 향단 예배가 영생의 예배입니다.
318절
야곱이 자기 집에게,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자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의 하나님들을 빼내라! 너희는 스스로 정결케하라!
너희의 겉옷들을 바꿔라! 우리가 일어나자.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의 날에 내게 대답하신, 하나님께 그곳에 제단을 만들려한다.
그분은 내가 진행했던 길에서 나와함께 계셨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의 하나님들을 빼내라!
하나님이란 단어는 일반 명사입니다. 이방의 하나님들은 뭡니까? 이것은 우상들 다른 하나님입니다.
이제 이들이 왜 있을까요? 그렇죠! 라반도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의 딸 라헬이 그 우상을 가져왔죠.
세겜에서 또 우상숭배하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배운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정결케하라!
몸을 씻고 마음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겉옷들을 바꿔라!
그들이 뭐하기 위해서, 예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그냥 옷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준비하고, 그리고 목욕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드립니다.
벧-엘로 올라가자.
그렇죠!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나의 환난의 날에 내게 대답하신, 하나님께 그곳에 제단을 만들려한다.
그분은 내가 진행했던 길에서 나와함께 계셨다.”
야곱이 지금 밑에 속마음이 사실 정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너! 거기 거해! 거기서 예배해!" 명령인데,
야곱은 지금 "아! 내가 똑같은 환란을 당했으니까, 건져주시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맞아요!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냐? 이 말이죠!
지금 "너 벧엘에서 거주하고 너! 예배드려야해!" 하고 명령이 떨어졌는데,
야곱은 지금, '그렇지! 내가 옛날에도 형의 낯을 피해서 도망할 때, 그때 하나님이 건져주셨지!
이번에도 나를 건져주실거야!" 하고 건짐 받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319절
그들이 야곱에게 자기들의 손에 있는 모든 이방의 하나님들
그리고 그들의 두귀에 있는 고리들을 주었습니다.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과 함께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감추었습니다.
그들이 이동하였는데, 사면에 있는 성들에게 하나님들의 공포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의 뒤를 추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야곱에게 자기들의 손에 있는 모든 이방의 하나님들
그리고 그들의 두귀에 있는 고리들을 주었습니다.
우상들을 다 버리고 장신구를 다 버립니다. 그렇죠! 예배를 드릴 때, 자세입니다.
예배는 아주 경건한 옷차림을 해야하구요.
하나님께 나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잘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에 방해물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사면에 있는 성들에게 하나님들의 공포가 있었기에,
브리스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주변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포심을 주셨습니다.
전쟁에서 질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야곱의 아들들의 뒤를 추격하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휴!" 했을 것입니다.
한번에 멸절되는 상황에서 그들이 쫓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도망가면서 안도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320절
야곱 그리고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가나안의 땅에 있는 루스 곧 벧-엘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건축하였으며, 그 지역을 엘-벧-엘이라 불렀는데,
자기 형제 앞에서 도망하는 그에게, 하나님들이 그곳에서 드러내지셨기 때문입니다.
야곱 그리고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가나안의 땅에 있는 루스 곧 벧-엘로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이제 벧엘로 돌아왔습니다.
그 지역을 엘-벧-엘이라 불렀는데,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은 거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 앞에서 도망하는 그에게, 하나님들이 그곳에서 드러내지셨기 때문입니다.
환란에서 건져주신 것을 마음속에 염두해 둔 것입니다.
지금 그때는 지났는데,
하나님을 생각할 때, "병에서 고쳐주시는 하나님, 인생의 실패에서 건지는 하나님!"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져주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있는 잘못된 신앙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그렇게 기대하면 우리는 어느 한계이상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321절
리브가를 젖먹였던 드보라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아래에 장사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습니다.
리브가를 젖먹였던 드보라가 죽었습니다.
리브가! 야곱의 엄마입니다.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고 20년 뒤에 야곱을 낳았습니다.
리브가가 20세에 결혼했다면 40살 때 낳은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보다 40살이 많습니다.
야곱 나이가 110세쯤이니까, 40년을 더하면, 리브가는 150세이며, 드보라의 나이는 170세입니다.
유모입니다. 언제 따라왔을까요?
야곱은 밧단아람에 혼자 갔기에,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합류된 것입니다.
드보라는 리브가의 유모로써 리브가와 머물다가 야곱과 합류되었습니다.
왜 합류되었을까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리브가가 죽었을수도 있고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야곱과 합류한 것입니다.
그녀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아래에 장사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습니다.
벧엘 아래! 벧엘보다 아래쪽입니다.
이제 벧엘으로 왔는데, 좀 떨어진 쪽으로 해서 장사한 것입니다.
아론바굿은 통곡의 상수리나무입니다.
자! 이제 오랫동안 머물렀으니까, 아무래도 가족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엄청 운 것입니다.
야곱이 왜 울었을까요? 어릴 때 부터 보고 자랐으니까 울었을 것입니다.
천국갔을까요? 지옥갔을까요? 물론 모릅니다.
저는 천국으로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죽으면 천국 갑니다.
하나님의 집이 왜 좋을까요?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것이 벧엘입니다.
드보라가 거기서 죽은 것입니다.
그가 왜 왔을까요? 이유는 알수 없지만,
영적으로 그가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도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 되어서 야곱에게 온 것입니다.
322절
하나님들이 밧단-아람에서 온 야곱에게 다시 보이셨으며,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들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다시는 네 이름이 야곱이라 불리지 말라.
네 이름이 도리어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분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다시는 네 이름이 야곱이라 불리지 말라.
네 이름이 도리어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브니엘에 있을때와 똑같은 말씀이 들려오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끝난 것인데! 이스라엘! 이것은 지금 반복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야곱이 지금 처음부터 벧엘로 왔어야 하는데 옆으로 길을 샌 것입니다.
방황한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미혹된 것입니다. 어디로요? 세겜으로!
서원한 대로 바로 벧엘로 왔어야 하는데, 그동안 인생이 낭비된 것입니다.
그렇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똑같은 말씀을 들었다면, 뭐예요? 아직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겜에서 적어도 8년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뭐예요. 야곱의 영은 정체상태입니다.
323절
하나님들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다. 너는 다산하라! 너는 많아져라!
민족과 민족들의 총회가 네게서 생기고, 왕들이 네 두고환에서 나온다.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며, 네 후의 자손에게도 내가 그 땅을 준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다. 너는 다산하라! 너는 많아져라!
다산하라? 애기도 다 낳았는데요.
무엇입니까? 다산하라! 거듭나게 하라! 구원 받게 하라! 영생받게 하라! 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이, 생명이 아닙니다. 영의 생명이, 생명인데!
지금 야곱의 문제가 무엇이냐? 자녀는 낳았지만, 자녀들이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는 구원속에 있지만, 자녀들이 여전히 영적으로 침체된 상태입니다.
벧엘에 거하면서 예배드리고 거하면 그래도 거듭날 수는 있을텐데, 야곱은 관심이 환란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다산하라! 너는 많아져라! 당연하죠. 구원이 많아지고 영생이 많아져야죠. 이것이 목적입니다.
이미 다 육적으로는 낳았습니다. 벧엘에서 영적으로 낳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민족과 민족들의 총회가 네게서 생기고, 왕들이 네 두고환에서 나온다.
하늘의 별 같은 구원의 사람들이 야곱을 통해 나와야죠!
왕들이 구원받은 복음전파자들을 의미합니다.
네 아래 구원들이 예비되어 있어! 너! 이제 이쪽으로 향해야 해!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여기 머물면서 이곳에서 네가 거듭남과 구원들을 만들어 내야해!
이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며, 네 후의 자손에게도 내가 그 땅을 준다.”
"너도 구원 안에 있을거야!
네 후의 자손! 너와 너의 아들들과 너의 손자들과 대대로 구원을 이루게 될 거야!"
"어디 있으면? 벧엘에 있으면!"이라는 하나님 명령입니다.
324절
하나님들이 그와 얘기하시던 지역에서 그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야곱은 그분이 자기와 얘기하시던 그 지역에 기둥을 세웠으며,
돌의 기둥 그 위에 부어드리는제물을 부어드렸으며,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들이 그곳에서 자기와 얘기하시던 지역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들이 그와 얘기하시던 지역에서 그의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위로 올라가다! 누굴까요? 성부하나님 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거듭남으로 내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영에 내주하십니다.
물론, 예수님 안에 성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위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성부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많이 만났습니다. 만났는데, 이 구절은 굉장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물론 세분이 전부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성부하나님은 더 귀한 말씀인데,
지금 이 대목은 아주 중요한 약속이고 명령입니다.
야곱은 그분이 자기와 얘기하시던 그 지역에
지역에? 벧엘 내에 한 지역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항상 따로 있습니다.
기둥을 세웠으며, 돌의 기둥 그 위에 부어드리는제물을 부어드렸으며,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자! 원래제단이었던 예배처는 아닙니다. 거기서 성부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예배처가 아닌 또 다른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니까 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기둥은 언약 기념비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부어드리는 제물! 전제 곧 포도주제물입니다.
포도주를 붓지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온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진 심령을 말합니다.
온전히 예수님의 영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기름 부었습니다. 이것은 제 3위의 성령님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성부하나님을 만나면, 예수님의 영과 제 3위 성령님의 영으로 충만해집니다.
지금! 이 장소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여기에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이 장소가 성전을 지을 장소입니다.
야곱에게 12 아들이 있습니다.
야곱은 결단한 것입니다.
과거에 야곱은 그 자리에 돌기둥을 세우고 성전을 짓겠다고 서원하며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야곱이 똑같은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들이 그곳에서 자기와 얘기하시던 지역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희한하지 않습니까? 원래가 벧엘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진짜 벧엘이라는 것입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수십년 전에 기둥을 세우고 성전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분을 또 만난 것입니다.
만나서 드디어 짓겠다고 기둥을 세웠습니다. 결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325절
그들이 벧-엘에서 이동하였으며, 다시 에브랏으로 가는, 땅의 근거리에 있었습니다.
라헬이 낳았습니다. 그녀는 낳는데 강팍하였습니다.
그녀가 낳는데 강팍하게 되자, 낳게하는여자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이자도 아들이니,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그녀의 영혼이 나가게 되어, 그녀가 죽은 것입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벤-오니라고 불렀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습니다.
라헬이 죽었으며, 에브랏 곧 베들-레헴의 길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이 그녀의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그것이 오늘까지 라헬의 무덤의 기둥입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이동하였으며,
이것이 야곱인 것입니다. 야곱은 순종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무엇이 다르냐 아브라함은 순종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야곱은 순종을 하기는 하는데 얻어 맞으면서 순종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원래 야곱이 주도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주어가 '그들이' 입니다. 누굴까요? 야곱의 자식들을 말하겠지요.
그들이 이곳에서의 문제를 말하겠지요.
여긴 교육도 안되고. 돈도 못벌고, 날씨도 좋지 않고, 위험하고, 무엇이든 말할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언약한 언약을 2번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벧엘을 떠남으로 온 징계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벧엘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벧엘은 가나안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너무나 쉽게 자기의 서원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이동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이동 안했으면 나중에 고센 땅에 가는 운명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야곱이 이동한 다음에 요셉을 잃어버립니다.
수 많은 징계들이 옵니다.
야곱의 실수 때문에 400년 동안에 지옥가는 후대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죠! 예배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하는데,
다른 많은 이유들로 하나님의 집을 떠나는 변명을 댑니다.
문화, 교육, 직업, 학교, 이유를 댑니다.
그리고 예배보다 그것을 더 중시할 때, 당장은 이득 같지만 무엇을 잃어버립니까?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에브랏으로 가는
에브라다! 베들레헴입니다.
땅의 근거리에 있었습니다. 라헬이 낳았습니다. 그녀는 낳는데 강팍하였습니다.
강팍하다! 악한 것입니다.
그녀의 영혼이 나가게 되어, 그녀가 죽은 것입니다.
라헬이 죽은 것입니다. 지옥 간 것입니다.
벧엘에 있어야 드보라처럼 천국가는데 부인이 지옥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릴 때, 우리 영은 좋아지고, 반대로 떠나면 나빠집니다.
떠나는 이유들이 많이 있겠지요. 문제는 우리는 너무 쉽게 교회를 떠납니다.
참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떠납니다.
예배를 드릴때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거듭남은 예배 조금만 드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예배를 드려야 구원이 유지되는데, 벧엘을 떠나니까, 라헬도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벤-오니라고 불렀지만,
슬픔의 아들입니다. 라헬 자신이 슬프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습니다.
오른팔의 아들입니다. 나중에 지역적으로 유다 바로 위에 베냐민이 있게 됩니다.
베냐민의 후대들이 나중에 구원을 많이 받게 됩니다.
라헬이 죽었으며, 에브랏 곧 베들-레헴의 길에서 장사되었습니다.
야곱이 그녀의 무덤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그것이 오늘까지 라헬의 무덤의 기둥입니다.
베냐민을 왜 낳았을까요? 그렇죠! 야곱의 4명의 부인가운데 야곱이 가장 좋아한 부인입니다.
항상 밤에 같이 잠을 잔 부인입니다.
야곱이 벧엘을 떠나니까, 하나님께서, "야곱! 라헬을 제일 좋아하지!" 하고 죽여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에게 불행이 오는 것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평생을 같이 살았던 여자입니다. 데려간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징계가 있지만, 무엇이 무서운 징계입니까?
드보라는 나이가 170세 되어서 죽을 때 되어서 죽은 것입니다.
다릅니다. 라헬은 제일 젊습니다. 제일 어립니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너! 부인 좋아하지! 데려갑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데 온갖 징계가 있지만,
제일 큰 고통으로 징계를 때리시는 것입니다.
326절
이스라엘이 이동하였으며, 에델의 망대 앞으로 자기 장막을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르우벤이 가서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열둘이었습니다.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며,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이며,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아진 그의 아들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동하였으며, 에델의 망대 앞으로 자기 장막을 펼쳤습니다.
에델은 양떼이고 망대는 높은 탑입니다. 물론 이것은 도시 이름은 아닙니다. 드디어 머문 것입니다.
망대 앞에 머문 것입니다. 이제 벧엘에서 내려오면서 헤브론을 향해 가는 길인데 중간에 머문 것입니다.
망대는 교만을 의미합니다.
에델은 양떼입니다.
곧 야곱이 보기에 자기 자녀들이 구원받은 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거듭남을 구원으로 오해하는데 그것이 교만입니다.
이제 이런 오해를 하나님께 교정시켜주는데, 르우벤이 자기 부인과 성관계를 가집니다.
그렇죠! 죄를 짓는 자는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기껏해야 거듭남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르우벤이 가서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였습니다.
르우벤이 자기 부인과 동침했습니다. 이것은 돌에 맞아죽을 죄 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징계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자기 부인과 동침했습니다.
이것이 가만히 있을 일입니까?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성전을 짓고 거주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하나님을 도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빌하가 거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성폭행 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징계가 계속 쏟아지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벧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열둘이었습니다.
이제 11명에서 12명이 된 것입니다. 언제! 베냐민이 낳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낳아진 그의 아들들입니다.
베냐민은 밧단 아람에서 낳은 것이 아닌데 베냐민 조차 밧단아람에서 낳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뭐예요! 야곱이 거듭남에 있을 때,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자기 첩하고 간음죄를 저지를 정도로 타락한 자들입니다.
12는 무엇입니까? 12는 거듭남의 숫자라는 것입니다.
"야곱! 네가 벧엘을 떠나서 무엇을 이룬줄 알아? 구원이 아니야! 거듭남밖에는 안돼!"입니다.
12는 거듭난 숫자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원과 영생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이삭은 타락되는 거듭남의 에서과 영생얻을 구원의 야곱을 만들어냅니다.
야곱은 현재 거듭남을 만듭니다.
거듭남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거듭남의 영적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유다는 구원의 영적 이름으로 사용됩니다.
야곱이 벧엘을 떠난 다음에 야곱의 영적인 모습이 후퇴됩니다.
넌! 거듭남의 조상이야!
다음 장부터 요셉에게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요셉이 영적인 세계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내가 망가지면 남이 일어납니다. 야곱의 영이 무너진 것입니다.
벧엘을 떠나서 구원이 아닌 거듭남의 이름으로 남게된 것입니다.
327절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체류하던, 마므레-기럇-아르바 곧 헤브론,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왔습니다.
이삭의 나이가 100년 80년이었습니다. 이삭이 숨끊어졌으며, 죽었습니다.
그는 노년에 나이가 꽉차서 자기 백성에게 모아졌습니다.
그의 아들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체류하던, 마므레-기럇-아르바 곧 헤브론,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왔습니다.
야곱이 에델의 망대에 살다가 이삭에게 왜 왔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려우면 아버지에게 가는 것입니다. 뭔가 일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유산을 상속 받게 됩니다.
야곱이 일이 잘 안됩니다. 일이 원래 목축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온 것입니다.
나중에 헤브론에서 나중에 어떤 일이 생깁니까? 요셉이 팔리게 됩니다.
얼마나 어려웠느냐 양떼를 키우기 위해서 세겜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멀리 도단까지 갑니다.
그렇게 양들을 먹일 풀이 없던 것입니다. 가난에 시달립니다.
언제까지?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오라고 부를 때까지 계속 가난에 시달립니다.
벧엘을 떠나자 물권이 떠나갔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힘도 떨어졌습니다.
드디어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얘기를 쓰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씁니다.
하나님 마음에 야곱이 상처를 준 것입니다.
그렇게 야곱에게 하나님이 애정을 표현했고, 그리고 기회를 주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벧엘을 떠나서 결국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온 것입니다.
이삭의 나이가 100년 80년이었습니다. 이삭이 숨끊어졌으며, 죽었습니다.
그는 노년에 나이가 꽉차서 자기 백성에게 모아졌습니다.
그의 아들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습니다.
장례를 하는데 에서를 만났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버지가 살던 집을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목축을 하는데 거기서, 요셉을 잃어버리고, 베냐민 잃어버리고, 그리고 유다가 간통합니다.
헤브론은 하나님이 약속한 장소가 아닙니다.
나중에 야곱이 헤브론에서 브엘세바로 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또 고센으로 오게 되는데 야곱이 엄청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입니다.
물론 고센에 가서 눈물로 많이 기도합니다.
회복은 되지만, 이 긴 세월동안 지금부터 고센 갈 때까지 야곱에게 파란만장한 일이 시작됩니다.
가장 사랑하는 부인죽고, 가장 사랑하는 요셉 잃어버리고, 막내 베냐민 잃어버리고,
뿐만 아니라 얼마나 큰 기근이 왔는지 자식들을 다 애굽으로 쌀사러 보내고 외롭게 지냅니다.
이 모든 불행들이 왜 왔느냐?
벧엘을 떠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처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학교 잃고, 직장 잃고, 다 잃어도 벧엘은 잃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성을 좋아하고, 물질 좋아하고, 학교 좋아하고, 직장 좋아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집!' '하나님을 만나는 집에 머물러야만 구원과 영생이 있는데,
이제 앞으로 야곱은 불행하게도 불신의 세계인 애굽에 살게 됩니다.
이것이 좋은일 입니까? 아닙니다. 벧엘에 살았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드디어 후대들이 전부다 지옥가게 됩니다.
애굽은 문명이 좋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종살이하게 됩니다.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지금 그것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부다 우리의 인생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벧엘에 살라고 했는데! 성전을 지으라고 했는데!
야곱은 쉽게 벧엘을 떠나가서 그의 아들들 12명 가운데 6명만 천국가고 6명은 지옥갑니다.
그리고 그 후대들은 몽땅 지옥 가는 데 나중에나 수백 년 뒤에 천국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불행이 왜 왔느냐?" 입니다. 벧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계신 곳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여기에 온전한 구원과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벧엘을 떠나면 안되며,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데 다윗처럼 끝까지 성전에 머물러야 합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35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