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This Blog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6장강해(Genesis 26 Exposition, Kyungho Park's Korean Translation of the Hebrew Bible]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6장 강해]

를 시청해보시고,

과연,

개역개정 성경과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이 무엇이 다른가?

과연,

기존의 성경해석과

박경호목사의 성경의 해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한번

비교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 큐 !!!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6장 강해]

(제목 : 은혜를 차단하는 다섯 원귀신 [블레셋]으로부터의 승리)

211절

아브라함의 기간에 있었던 첫째 흉년과 별도로, 그 땅에 흉년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간에 있었던 첫째 흉년과 별도로,

"아브라함이 아이성과 벧엘 사이에 큰 은혜를 받다가, 흉년이 들어서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사람은 기근과 어려움을 잘 이기지 못합니다.

은혜 가운데 있다가도 흉년이 오면 은혜를 버리고 양식을 찾아서 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땅에 흉년이 있었습니다.

이삭의 기간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동일하게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는데,

이삭도 마찬가지로 흉년의 문제로 블레셋으로 갑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이삭은 그랄로,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이제까지는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 살았습니다. 거듭남의 땅에 살았습니다.

이제 구원이라는 가나안 으로 여겨지는 블레셋 땅으로 간 것입니다.

블레셋 땅이 구원의 가나안 땅이냐? 구원이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블레셋은 가나안 땅에 있는데, 유사구원입니다.

이제 유사구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1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이셨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면 안된다. 내가 네게 말하는 땅에 머물러러! 너는 그 땅에 체류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축복하는데,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모든 땅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된 맹세를 확정하게할 것이며,

네 자손을 두하늘의 별들같이 많아지게할 것이며, 네 자손에게 이 모든 땅을 줄 것이다.

네 자손으로 땅의 모든 민족들이 스스로 축복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내 음성을 들었으며,

내 지킬 것과 내 명령들과 내 율례들과 내 율법들을 지킨 것 때문이다.”

이삭은 지금 구원으로 들어간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지금 임재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번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은 2번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삭이 지금 가나안 땅이라고 생각한 곳에 들어왔고,

'가나안 땅이야!'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사실은 유사 구원입니다.

블레셋 땅에 있는데, 하나님께서 '너! 아니야!' 라고 말씀 하시지 않고, 애매합니다.

이제 계시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죠! 나중에 하나님의 계시로 야곱과 에서를 분별해주었던 계시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유사구원에도 계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시가 온다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닙니다.

왔는데, 그랄로 갑니다. 왜요? 가나안 땅 인줄 알고!

아브라함이 내 음성을 들었으며,

아브라함이 음성을 듣는다! 저는 음성을 귀히 여깁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는 가짜 음성이 너무 많으니까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내 지킬 것과 내 명령들과 내 율례들과 내 율법들을 지킨 것 때문이다.”

구원이 무엇이냐?

이 말씀 그대로 구원이란 것은?

하나님의 내적인 음성이든, 지혜의 말씀이든, 설교든, 결과적으로 지킬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준수하는 것입니다. 또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율례! 레위기 예배학 곧 율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이란 것은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아브라함이 행하였습니다.

이삭도 이제 그 길을 따라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정말 땅을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영적인 상태입니다. 곧 구원의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구원받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입니다.

213절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습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그의 여자를 물었습니다.

그는 “그녀는 나의 여자입니다.

리브가는 모양이 선하기에, 그녀로 인하여 그 지역의 사람들이 나를 죽이지 않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하기가 두려웠기에, “그녀는 나의 누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내 부인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죽기 싫은 거예요!

그래서 '그녀는 나의 누이입니다!' 라고 속인 것입니다. 물론 누이가 맞습니다. 하지만 거짓입니다.

어떤 거짓입니까? 부분적 거짓입니다. 천국에 갈까요? 못 들어갑니다.

유사구원이 무엇이냐? 유사구원은 온전히 삽니다. 남들이 볼 때, 괜찮게 보입니다.

'이 정도 쯤이야!' 라는 선이 있는데, 마음의 거짓은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목적이 천국지옥입니다. 이제 이삭이 죽을까봐 거짓말을 합니다.

214절

그곳에서 그에게 기간이 길어지게 된 것입니다.

블레셋족속의 왕 아비멜렉이 창문을 통하여 내려다보았는데,

오! 이삭이 그의 여자 리브가에게 성접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렀으며 말했습니다.

“오! 정말이지, 그녀가 너의 여자인데, 어떻게 너는 ‘그녀는 나의 누이입니다.’라고 말했느냐?”

이삭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녀를 인하여 죽지 않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그에게 기간이 길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래 머뭅니다. 원래 이삭이 어렸을 때는 구원에 있었습니다.

구원에 잠깐 들어왔다가 다시 거듭남으로 물러갑니다. 그리고 다시 유사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블레셋족속의 왕 아비멜렉이

아비멜렉은 이름이 아니고, 블레셋 언어로 왕이라는 호칭입니다.

오! 이삭이 그의 여자 리브가에게 성접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 접촉! 애무라든가, 뽀뽀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오! 정말이지, 그녀가 너의 여자인데, 어떻게 너는 ‘그녀는 나의 누이입니다.’라고 말했느냐?”

이삭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녀를 인하여 죽지 않기 위함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삭의 거짓이 걸린 것입니다. 탄로가 난 것입니다.

215절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왜 너는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한 명이 네 여자와 조금 동침하였다. 네가 우리에게 속건제를 가져들어오게하였다.”

아비멜렉이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말했습니다. “이 남자나 그의 여자를 만지면 그는 죽고 죽는다.”

백성 중 한 명이 네 여자와 조금 동침하였다.

이제 누가 끌어안았든지, 뽀뽀했든지, 가슴을 만졌든지, 성추행 한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처녀라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네가 우리에게 피해입힌죄제물을 가져들어오게하였다.”

당연합니다. 다른 아내를 만졌으면,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보상을 해야하고, 빨리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블레셋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데, 천국에 못가는 믿음입니다.

구원과 유사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성추행은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것은 분명히 모든 하나님의 명령과 지킬 것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구원관입니다. 그런데 거짓, 성추행, 안됩니다.

아비멜렉이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말했습니다. “이 남자나 그의 여자를 만지면 그는 죽고 죽는다.”

남편과 부인이 있는데, 만진다! 우리가 왜 만집니까?

우리가 전갈을 만지나요? 뱀을 만지나요? 만지지 않습니다. 끔찍합니다.

무엇을 만집니까? 예뻐서 만집니다. 모든 접촉은 다 성적인 욕망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성추행은 접촉입니다. 지옥입니다. "죽는다?" 구원 상실 입니다.

216절

이삭이 그 땅에 씨뿌렸으며, 그 해에 100곱을 얻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그 남자가 커졌습니다. 그는 점점 진행하여 갔으며, 마침내 매우 커졌습니다.

양염소떼의 가축과 소떼의 가축과 하인이 그에게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족속들이 그에게 질투하였습니다.

블레셋족속들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기간에, 그의 아버지의 남종들이 판, 모든 우물들을 메웠는데,

그들의 흙으로 그것들을 채웠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에게서 매우 강해졌으니, 너는 우리와 함께 가라!”

이삭이 그 땅에 씨뿌렸으며, 그 해에 100곱을 얻었습니다.

원래 이삭은 농사꾼이 아닙니다. 원래 이삭은 목축업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흉년에 왜 민감하냐? 비가 오지 않으면 풀이 자라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사를 지었습니다. 왜요? 비옥한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100배! 엄청 거둬들인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번 것입니다. 부수입입니다. 목축! 전문직입니다.

양염소떼의 가축과 소떼의 가축과 하인이 그에게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삭이 그곳에서 큰 부자가 됩니다. 복 일까요? 아닙니다.

블레셋족속들이 그에게 질투하였습니다.

질투! 천국 못가는 것입니다. 무엇이요. 거짓, 성추행, 질투!

우린 질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남이 잘되면 배 아프죠! 그리고 망하기를 원하죠!

내가 잘되기를 원하죠! 질투가 있으면 천국에 못갑니다.

시기 질투는 경쟁을 유발합니다. 천국 못갑니다. 라헬은 지옥 갔습니다.

블레셋이 무엇이냐? 말씀대로 삽니다. 하지만 천국에는 미달되는 것이 블레셋입니다.

블레셋족속들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기간에, 그의 아버지의 남종들이 판, 모든 우물들을 메웠는데,

아브라함이 과거에 미혹되어서 동일하게 이곳에 왔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물을 팠었는데, 이삭이 잘되니까 배가 아픕니다. 그러니까 이삭의 우물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한마디로 "엿 먹어라!" 입니다. 질투하는 사람이 해코지 하는데, 이삭 때 흙으로 덮어버린 것입니다.

그 물가지고 농업용수로도 사용하고, 그 물가지고 각종 모든 것에 잘되니까 열 받아서 메운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에게서 매우 강해졌으니, 너는 우리와 함께 가라!”

이삭이 잘되니까 너! 우리와 하나가 되자 너! 이제 한편이 되자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유발하는데,

동시에 또 부자가 되니까 블레셋 족속이 끌어안고 하나가 되자는 것입니다.

217절

이삭은 그곳에서 갔으며, 그랄의 계곡에 장막쳤으며, 그곳에서 거하였습니다.

이삭이 돌아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기간에 팠던 아브라함의 죽음 후에 블레셋족속들이 메운,

물의 우물들을 팠습니다. 그가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들로 그것들에게 이름들을 불렀습니다.

이삭의 남종들이 계곡에서 팠으며, 그곳에서 생명의 물의 우물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그곳에서 갔으며, 그랄의 계곡에 장막쳤으며, 그곳에서 거하였습니다.

계곡은 은혜가 없는 땅입니다. 이제 '부자가 된 것이 잘된 것이냐?' 입니다.

부자 되어서 질투심을 받았습니다.

우물! 우물은 은혜입니다. 갈등가운데 은혜가 소실되었습니다.

이삭이 유사 구원 속에 있으면서 돈도 벌었는데, 은혜가 떨어집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부유함을 추구합니다. 돈이 많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눈물이 나지 않습니다. 돈이 많으면 교만해집니다.

히스기야가 돈이 많아서 교만해지고 구원상실 될 뻔했습니다.

돈이 많은 것 복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계곡! 은혜 없는 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블레셋입니다.

이삭이 돌아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 기간에 팠던 아브라함의 죽음 후에 블레셋족속들이 메운,

물의 우물들을 팠습니다.

과거에도 계곡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인데, 똑같이 질투심 때문에 메운 우물입니다.

그가 자기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들로 그것들에게 이름들을 불렀습니다.

이제 다시 계곡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가 없었는데, 다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삭의 남종들이 계곡에서 팠으며, 그곳에서 생명의 물의 우물을 얻었습니다.

생명! 생명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영이 살아있으면 애통합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회개가 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런 속임의 죄, 성추행의 죄, 질투의 죄들, 남에게 해코지 하는 죄들, 이것들을 회개해야 됩니다.

218절

그랄에 사육하는 자들이 이삭의 사육하는 자들과 함께 다투어 말했습니다.

“이 물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이 그와 함께 스스로 행패부렸기에,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그랄에 사육하는 자들이 이삭의 사육하는 자들과 함께 다투어 말했습니다.

'다투어!' 다툼! 다툼도 천국 못갑니다. 우리가 구원과 거듭남을 아는데, 구원은 순종의 삶입니다.

블레셋은 유사 구원입니다. 이것이 없어야 합니다. 다툼이 있으면 천국 못갑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다투었습니까? 그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메운 것을 다시 파서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이 물은 우리의 것이다.”

그들이 그와 함께 스스로 행패부렸기에,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다투고 행패부리고, 다툴 때는 멱살도 잡기도하고, 다툴 때, 몸을 치고 박기도 하고, 몸싸움, 다툴 때,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다툴 때, 물건을 내리치기도 하고, 행패! 이것을 경험 하는 것입니다.

누가요? 이 모습은 블레셋도 있지만, 이삭의 내면입니다. 없으면 가나안 땅에 가야죠.

지금 크리스쳔인데, 이런 일이 있는 것입니다.

거짓이 있고, 성추행이 있고, 그리고 질투가 있고, 다툼이 있고, 행패가 있는 것입니다.

219절

그들이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도 다투었으며, 그 이름을 싯나라 불렀습니다.

싯나! 싯나는 대적입니다. 남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못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납해야 하는데, 이 관계에서 남들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 이것이 풀어집니까? 우물! 회개가 터져야 하는데, 회개를 해도, 회개가 계속 막히는 것입니다.

우물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회개가 임하긴 임해요. 하지만, 지속력이 없습니다.

회개하다가도 눈물이 말라버립니다. 블레셋은 회개가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삭이 이런 시험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220절

그가 그곳에서 이사하였으며, 다른 우물을 팠으며, 그것에 대하여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 지금 여호와께서 우리를 넓히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 다산할 것이다.”

그가 그곳에서 이사하였으며,

이사했습니다. 처음에는 농지에 있었습니다. 농업으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블레셋 왕이 초청해서 계곡에 갔습니다. 거기서 우물을 2개 팝니다. 그것도 빼앗깁니다.

이삭이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에 대하여는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불렀습니다.

이제 다투지 않습니다.

“ 지금 여호와께서 우리를 넓히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 다산할 것이다.”

다투지 않지만 욕망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다산할 것이다. 다산! 많은 사람들이 번성을 좋아합니다.

사람에게 욕망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명예욕, 어쩔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블레셋입니다. 다투는 자들과는 멀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블레셋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블레셋 땅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지킬 것과, 명령과,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삭은 지금 자기가 가나안 땅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닌 것입니다.

이삭의 내면에는 아직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잘되려는 욕망! 좋은 것 아닙니다. 누구나 성공을 꿈꿉니다. 좋은 것 아닙니다.

요셉이 감옥에 있는데, 술 관원과 떡 굽는 관원의 꿈을 다 맞춰버립니다.

그런데 구출하러 오질 않습니다. 왜요? 요셉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고통가운데 누구나 기다리지 않나요?

그러나 저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고통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직접 만난 사람입니다.

왜 만났응까요? 저는 성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할 때, 정말이냐고 할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저는 성공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산할 것이다!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고통을 즐기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이런 욕망들은 자아에서 나옵니다. 이런 자아가 블레셋입니다.

누구나 다 자아가 있습니다. 인간의 자아 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자아 속에 거짓과, 성추행과, 질투와, 다툼과, 행패와, 욕망이 있고 대적이 있는 것입니다.

자아가 역사 할 때는 구원이 아닙니다. 유사구원입니다.

몇이냐 우물 네개가 나옵니다. 사실은 자아라는 원귀신은 뿌리가 다섯으로 있습니다.

블레셋은 성이 다섯입니다. 원래 영의 세계는 한 마리가 한 마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다양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귀신 역사가 제압된 것입니다.

역사하면, 가나안이라 할지라도 가나안이 아닙니다. 유사구원입니다.

이제 다투지는 않았지만, 이삭이 욕망이 꺼지지 않은 것입니다.

221절

그가 그곳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이셨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들이다. 내가 네게 있으며 너를 축복할 것이며,

나의 종 아브라함을 인하여 네 자손을 많아지게할 것이니, 너는 두려워하면 안된다.”

그가 그곳에서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빼앗지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입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요? 우리는 욕망을 회개해야 합니다.

인간은 꿈이 있고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되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해야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성공! 추구하지 않습니다.

성공 보다는 명령순종을 추구합니다. 많은 분들이 잘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아 입니다.

하나님이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성공해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의입니다. 브엘세바 과거에 아브라함이 있던 장소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보이셨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셨습니다. 자! 처음에 그랄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 그것이 구원인줄 알았습니다.

그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땅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가나안 땅에서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들이다. 내가 네게 있으며 너를 축복할 것이며,

나의 종 아브라함을 인하여 네 자손을 많아지게할 것이니,

무엇입니까? 이제 네가 구원 안에 있어! 후손들이 나타날거야! 어떤 후손입니까? 구원의 후손들입니다. 이제 네가 구원에 들어왔어! 너에게 이제 구원이 나타날거야! 하고 드디어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222절

그가 그곳에 제단을 건축하였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곳에 자기 장막을 폈습니다.

이삭의 남종들이 그곳에서 우물을 파냈습니다.

그가 그곳에 제단을 건축하였으며,

가나안 땅 외에는 한군데도 제단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기합니다.

구원 안에서만 예배가 열납되는 것입니다. 어떤 예배일까요?

번제단의 예배? 아니죠. 그것은 거듭날 때 예배입니다.

바로 등잔대 예배와 떡상의 예배가 열납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이름! 통치입니다. 임재입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이삭에게 임재하신 것입니다.

그곳에 자기 장막을 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서 산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임재하는 것입니다.

그 이제 각방 쓰다가 한 방으로 합친 것입니다.

이삭의 남종들이 그곳에서 우물을 파냈습니다.

우물! 우물은 은혜입니다. 블레셋에서는 은혜를 얻었다가 또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가나안은 그렇지 않습니다. 브엘세바 브엘! 우물입니다. 세바! 일곱입니다.

매일 회개가 터지는 것입니다. 매일 죄를 토설하는 것입니다.

매일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천국은 의인이 가는 것입니다. 죄의 결박들이 벗겨져야 합니다.

이제 이런 죄들이 서서히 벗겨지는 것입니다. 이삭의 죄들이 벗겨졌습니다.

매일 은혜로 살아갑니다. 매일 회개로 살아갑니다.

223절

아비멜렉이 그랄에서 자기 친구 아훗삿과 그의 군대의 장관 비골과 그에게 진행하였습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뭐하러 나에게 왔느냐?

너희가 나를 미워하였으며, 너희가 너희에게서 나를 보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꼐서 너와 함께 계신 것을 보고 보았다.

우리가 말하기를, ’바라건대, 우리와 너 사이에, 우리에게 맹세가 있어, 우리는 너와 언약을 맺으려한다. 우리가 너를 만지지 않은 것같이 또한 우리가 네게 오직 선한 것을 행한 것같이,

너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너를 평안히 보냈는데, 너는 여호와께 축복받은 자다.”

그가 그들에게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먹었으며 마셨습니다. 그들이 아침에 일찍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각각 형제로 맹세되었습니다. 이삭이 그들을 보내었으며, 그들은 그에게서 평안히갔습니다.

아비멜렉이 그랄에서 자기 친구 아훗삿과 그의 군대의 장관 비골과

아비멜렉은 블레셋 언어로 왕이라는 이름입니다. 아훗삿 친구이름입니다.

원래 아브라함 때도 이런 똑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를 만지지 않은 것같이

이런 거예요! "나! 너희 만지지 않았어!" 뭐예요? 자기 의가 충만합니다.

또한 우리가 네게 오직 선한 것을 행한 것같이,

웃깁니다. 자기들이 선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물 빼앗고, 다투고, 성추행하고, 이런 자들이 블레셋입니다.

내가 선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사구원입니다.

자기를 모릅니다. 자기 자아를 모릅니다. 자기 허물을 모릅니다. 지옥가는 것을 모릅니다.

회개가 안됩니다. 유사구원입니다.

지금! 이삭의 것을 빼앗은 자들인데, 이삭의 것을 가지고 다투었는데,

그런데 자신이 선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사구원이며 회개가 멈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내면에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멈춰버렸습니다.

너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악행하지 마!" 왜일까요? 이삭이 엄청 번성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종들을 통해서 전쟁을 합니다. 아브라함도 218명을 키웠습니다.

그것도 낳은 자녀가운데서 종들이니 전체가 천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뭐예요 과거에 빼앗겼으니까, 블레셋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격하지 않도록 계약 맺을려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각각 형제로 맹세되었습니다.

불가침조약! 어디서? 그랄 땅, 바로 르호봇 우물과 브엘세바 사이가 경계선입니다.

영적인 경계가 무엇이냐? 이런 죄들에서 벗어나 거짓이 없고, 성적으로 거룩하고, 질투하지 아니하고,

다투지 않고, 대적하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는 자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얻은 땅입니다. 이제 이삭은 변화가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변화되지 않은 것 입니다.

블레셋이라는 기독교와 이삭이 믿는 기독교가 분리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들을 보내었으며, 그들은 그에게서 평안히갔습니다.

드디어 유사구원과 분리되었습니다.

이제 이삭은 벗어났습니다. 아브라함도 한때 브엘세바에 머물렀죠.

나중에 벗어날 때 일곱 암양을 세우면서 그들에게 줍니다. 맹세합니다.

유사에서 벗어나 참된 구원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224절

그 날에 이삭의 남종들이 왔으며, 자기들이 판 우물의 이유를 인하여 그에게 알게하였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그것을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해서 그 성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브엘세바입니다.

자기들이 판 우물의 이유를 인하여

우물을 팠는데, 어떤 내용을 이삭에게 알려준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남종들은 많이 파보았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물이 한 개가 아닙니다. 일곱 개 입니다. 놀랐을 것입니다. 회개가 매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간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매일 회개 되는 삶! 이것이 구원의 삶입니다. 안되면 유사구원일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것은 회개가 멈추면 구원도 멈춰버립니다.

“우리가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그것을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세바! 세바는 7입니다. 세바는 맹세입니다. 맹세는 서원입니다.

이삭이 깨달은 것입니다. 아! 그땅이 가나안이 아니었구나!

아! 그것이 구원이 아니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지금 맹세입니다.

아! 그것이 구원이 아니었구나! 유사구원은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죄가 있으면 구원 아닙니다. 구원은 죄가 없고,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왔노라! 죄인은 거듭난 자입니다. 이제 의인 되어야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이냐? 이런 유사구원이 내게서 벗겨져야 합니다.

내게 거룩이 임해야 합니다. 이런 죄악들이 물러가야 합니다.

그렇게해서 그 성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브엘세바입니다.

땅으로 볼 땐,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구원의 땅입니다. 브엘세바라는 명칭은 구원의 입성입니다.

225절

에서는 40년의 아들이었으며,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 그리고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여자로 데려왔습니다. 그녀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존재의 진통이 되었습니다.

에서는 40년의 아들이었으며,

이삭이 쌍둥이를 60세에 낳았습니다. 에서가 40세니까, 이삭은 100세입니다.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 그리고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여자로 데려왔습니다.

분명히 약속받았습니다.

내가 네 자녀들로 하여금 하늘이 별같이 할거야! 약속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이루어졌느냐? 야곱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이삭의 자녀 에서가 지옥으로 가는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가 아내로서 불신자를 데려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녀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존재의 진통이 되었습니다.

진통! 고통! 구원 받으면 고통이 시작됩니다.

어떤 고통이냐 영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불신자를 상대할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를 볼 때 괴롭습니다.

구원은 하나님 때문에 기쁨을 얻지만, 동시에 세상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일까요? 로마가 못 박은 것 입니다.

세상에서부터 창에 찔립니다. 가시관을 씁니다. 세상에서부터 불신자들입니다.

그들도 예배를 드렸겠지요. 예배드린다고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의 상태가 중요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영의 상태가 불신자입니다.

거기서 오는 고통은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삭과 리브가가 구원 안에서 그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며느리를 데려왔는데 불신자들입니다.

예배도 드리고 전도하면서 같이 함께 믿음을 권면 했겠죠.

그러나 그들이 믿음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삭이 유사구원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고통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들 때문에 고통 당하는것입니다.

내 죄는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남의 죄들때문에 고통을 느낍니다.

반대로 그들의 구원으로 인해, 그들의 아들 야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은 남을 통해 고통을 느끼지만 동시에 남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26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목록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