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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7장강해(Genesis 37 Exposition, Kyungho Park's Korean Translation of the Hebrew Bible]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7장 강해]

를 시청해보시고,

과연,

개역개정 성경과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이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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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성경해석과

박경호목사의 성경의 해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한번

비교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 큐 !!!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37장 강해]

(제목 : 속죄의 그림자 요셉)

341절

야곱이 자기 아버지의 체류의 땅 곧 가나안의 땅에 거하였습니다.

"구원 안에 거함을 의미합니다.

342절

다음은 야곱의 후대입니다. 17년의 아들 요셉이 자기 형제들과 양염소떼를 사육하게 되었습니다.

소년 그는 자기 아버지의 여자들 빌하의 아들들 그리고 실바의 아들들과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아버지에게 그들의 악한 평가를 가져들고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모든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하였는데, 그는 자기에게 노년기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에게 채색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그들이 평안으로 그에게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17년의 아들 요셉

요셉이 가나안 땅에 오기 전 6년전에 태어납니다.

가나안 땅에 온 지 11년쯤 된 것입니다.

소년 그는 자기 아버지의 여자들 빌하의 아들들 그리고 실바의 아들들과 있었습니다.

빌하는 라헬의 몸종이었습니다. 실바는 레아의 몸종이었습니다.

이런것입니다. 12아들 가운데 악한 자들이 행동의 중심이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그들의 아버지에게 그들의 악한 평가를 가져들고왔습니다.

형제들은 목축을 하였고, 요셉은 이제 전령으로서 보고하는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모든 아들들보다 요셉을 사랑하였는데, 그는 자기에게 노년기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년이란 단어는 20살 이하의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장년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노년은 보통 영생을 많이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영생 단계에서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영이 더 훌륭합니다.

거듭남 단계의 사람에게서 인도받는 사람이 당연히 수준이 낮습니다.

하지만, 영생 단계에서는 더 높은 차원에서 인도하니까 요셉이 남보다 더 훌륭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그에게 채색 옷을 만들었습니다.

채색옷은 고급옷으로 포함되지만, 사실은 이것은 거듭남의 옷을 상징합니다.

구원의 옷은 항상 흰옷입니다. 광채가 나는 것은 영생의 옷입니다.

그래서 채색 옷은 거듭남의 옷, 흰옷은 구원의 옷, 광채나는 것은 영생의 옷으로 이렇게 대비됩니다.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형제간에는 아무래도 시기심이 있습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미워한다는 이런 단어는 불신 세계에 있는 단어입니다.

원래 미움이란 단어는 거듭남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아직 그런 죄악 가운데 머무는 불신자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평안으로 그에게 얘기할 수 없었습니다.

거듭난 요셉과 불신 사이에는 영적인 소통이 어렵습니다. 영적인 갭을 의미합니다.

343절

요셉이 꿈을 꿈꾸었으며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를 미워하기를 또 거듭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바라건대, 당신들은 내가 꿈꾼 이 꿈을 들으세요!

오! 우리가 들의 가운데서 곡식단들을 묶고있는데,

오! 내 곡식단이 일어났으며 또한 오! 당신들의 곡식단들이 세워졌고,

돌며 내 곡식단에 스스로 절하였습니다.”

요셉이 꿈을 꿈꾸었으며

우리가 거듭나면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데, 주로 영이 어릴 때는 이제 꿈으로 옵니다.

꿈과 환상은 우리가 거듭날때 오는 계시입니다. 구원 받은 후에는 계시가 음성으로 많이 옵니다.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를 미워하기를 또 거듭하였습니다.

점점 더 갭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셉은 점점 더 영이 출중해지고 형들은 더 악해지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당신들은 내가 꿈꾼 이 꿈을 들으세요! 오! 우리가 들의 가운데서 곡식단들을 묶고있는데,

곡식 단! 곡식 단이란 것은 구원에 임박한 영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추수가 구원입니다. 현재일이 아닌 미래일입니다.

오! 내 곡식단이 일어났으며

곡식 단은 구원 직전 내지 구원이 임박한 초입 구원입니다.

일어나는 것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또한 오! 당신들의 곡식단들이 세워졌고, 돌며 내 곡식단에 스스로 절하였습니다.”

곡식 단들이 아직 낱알로 추수되지 않았을 지라도 구원에 임박할 때를 말합니다.

절하다! 물론 나중에 이제 가뭄이 들었을 때, 형제들이 두 번 왔을 때, 총리인줄 모르고 절하게 됩니다.

뭐예요? 그 미래일을 말함과 동시에 이것은 요셉이 누구냐?

요셉은 거듭난 구원 받은 자들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하는 것이죠. 형제끼리 절하진 않지요.

뭐예요? 그것은 신에 대한 예의입니다. 높은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이제 형제들이 하나님께 절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누구입니까? 동생인데 누구를 상징하느냐?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말할 때, 그것은 신앙의 표본들을 말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정말일까요?

344절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 위에 왕노릇하고 왕노릇하느냐? 혹여, 네가 우리를 다스리고 다스리느냐?”

그들은 그의 꿈들로 인하여 그의 얘기들로 인하여 그를 미워하기를 또 거듭하였습니다.

“네가 우리 위에 왕노릇하고 왕노릇하느냐?

왕 노릇! 왕은 예수님이 왕입니다.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왕 노릇, 우리에게 왕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왕을 섬기는 것입니다.

혹여, 네가 우리를 다스리고 다스리느냐?”

그렇죠! 예수님이 우리를 통치하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 다 떠나갑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를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의 꿈들로 인하여 그의 얘기들로 인하여 그를 미워하기를 또 거듭하였습니다.

점점 더 요셉은 신령하게 됩니다. 나이가 20세가 구원인데 17세이면 구원이 임박한 상태입니다.

반면 형제들은 거듭남도 안된 상태이니까 점점 영적인 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345절

그가 또 다른 꿈을 꿈꾸었는데, 그것을 자기 형제들에게 보고하였으며 말했습니다.

“오! 내가 또 꿈을 꿈꾸었습니다. 오! 태양과 달과 11개의 별들이 내게 스스로 절합니다.

자! 태양은 영생급을 말합니다. 달은 구원 중에서 높은 급수입니다.

달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정도를 말합니다.

별들! 별은 구원입니다.

내게 스스로 절합니다! 이런일이 있었을까요?

그렇죠!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만나러 2번가고, 맨 마지막 세 번째에 야곱이 같이 갑니다.

그때 야곱이 절하게 됩니다. 레아도 절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예언인 동시에 영적인 모습입니다.

태양 급! 영생 급인 야곱과 그리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달 급의 레아와 구원에 대한 11형제들입니다.

정말 그들이 끝에가서 구원 받았을까요? 예! 받았지만 결국 대부분은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이 요셉은 그리스도입니다.

요셉은 지금 영생 급이 아닙니다. 거꾸로 아버지가 영생 급입니다.

영생 급이 절하겠습니까? 왜 절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으로 등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총리가 되는 것, 바로 우리에게 왕 되는 것입니다.

346절

”그가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 형제들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꿈꾼 이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네게 땅으로 스스로 절하려고, 가고 가겠느냐?”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질투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얘기를 지켰습니다.

”그가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 형제들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야곱이 꾸짖는 것입니다.

“네가 꿈꾼 이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네게 땅으로 스스로 절하려고, 가고 가겠느냐?”

우리가 너에게 절을 한다고? 그런데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가고 가겠느냐?' 요셉은 꿈의 내용에 간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왜? 영생 급이냐? 그 말을 듣자마자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어! 가겠네!' 간다는 것입니다. 언제요? 나중에 13년 뒤에요.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질투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 얘기를 지켰습니다.

얘기를 듣죠! 그리고 새기는 것입니다.

왜요? 야곱은 그 꿈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어느정도 믿은 것입니다.

347절

그의 형제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의 양염소떼를 사육하려고 세겜에 갔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네 형제들이 세겜에서 사육하지 않느냐?

너는 가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낸다.” 그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바라건대, 너는 가라! 네 형제들의 평안 그리고 양염소떼의 평안을 보아라!

너는 내게 얘기하러 돌아와라!” 그가 그를 헤브론의 골짜기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세겜으로 갔습니다.

그의 형제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의 양염소떼를 사육하려고 세겜에 갔습니다.

세겜! 이들이 현재 거하는 데는 헤브론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세겜에 있다가, 벧엘에 잠깐 있다가, 베들레헴을 거쳐서 헤브론에 왔습니다.

망한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 유산을 받게 됩니다. 그 전에 에서는 아버지를 떠나가게 됩니다.

헤브론에 사는데 세겜은 100키로 떨어져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거리입니다.

왜일까요? 풀이 없으니까요.

지금 성경에 나오지 않았지만 얼마나 풀이 없으면 100키로를 이동할까요?

100키로! 일반인이 걸어봤자 하루 30키로 걷습니다. 양, 염소떼 이것은 더 오래 걸립니다.

아주 먼 거리를 왜 갔을까요? 풀이없는 것입니다. 기근상태입니다. 야곱은 가난한 것입니다.

“바라건대, 너는 가라! 네 형제들의 평안 그리고 양염소떼의 평안을 보아라!

뭐예요! "어떻게 잘있는가? 가보라!"는 것입니다.

항상 요셉은 전령으로서 활동했으니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죠! 안들어오니까요!

몇일이면 보는데 안들어오니까, 지금 보낸 것입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가 그를 헤브론의 골짜기에서 보냈습니다.

골짜기는 일반적으로 영적인 침체를 말합니다.

348절

오! 한 남자가 들에서 방황하는 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남자가 그에게, “당신은 무엇을 찾습니까?”라는 말로 물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나의 형제들을 찾으니,

바라건대, 그들이 어디서 사육하는지 내게 알게하십시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들이 여기서 이동하였는데,

나는 그들이, ‘우리가 도단으로 가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뒤쫓아 갔으며, 도단에서 그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찾습니까?”라는 말로 물었습니다.

세겜 지역이 넓으니까 못찾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형제들을 찾으니, 바라건대, 그들이 어디서 사육하는지 내게 알게하십시오!”

이제 그 낯선자이지만 그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기서 이동하였는데, 나는 그들이, ‘우리가 도단으로 가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25키로 떨어져 있습니다. 왜일까요? 세겜에도 풀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축에 엄청난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도단은 2개의 우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다른데 보다 우물이 많은 지역입니다.

349절

그들은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워지기 전에, 멀리서 그를 보았으며,

그를 죽이기로 자기들끼리 계략짰습니다.

그들이 각각 자기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오! 꿈들의 당사자가 저기 왔다.

지금 너희는 와라!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를 구덩이들 중 하나에 던지고,

‘악한 생명이 그를 먹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본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워지기 전에, 멀리서 그를 보았으며,

그를 죽이기로 자기들끼리 계략짰습니다.

이제 구원이 임박한 요셉! 불신자인 형제들! 영적인 갭이 있는데, 죽이려고 계략을 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죽이고, 그를 구덩이들 중 하나에 던지고,

이 구덩이는 일반 구덩이가 아닙니다. 원래는 우물들이었습니다.

우물들인데 물이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뭐예요? 그 도단 조차도 물이 없는 것입니다.

양, 염소떼도 각각 하루 40키로씩 물을 먹어야 되는데 물이 없는 것입니다.

악한 생명이 그를 먹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본다.”

이제 예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누가? 악한 생명! 마귀들은 예수님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350절

르우벤이 들었으며, 그들의 손에서 그를 건지게하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목숨을 쳐죽이지 말자.”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피를 흘리면 안된다.

너희는 그를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라! 너희는 그에게 손을 내밀면 안된다.”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를 건지고 자기 아버지에게 그를 돌아가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르우벤이 들었으며, 그들의 손에서 그를 건지게하였으며 말했습니다.

르우벤은 죽이지 말자고 합니다.

르우벤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피를 흘리면 안된다. 너희는 그를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라!

왜일까요? 르우벤은 거듭난 것입니다. 2개의 우물, 우물이 무엇입니까? 죄를 씻는 것이 우물입니다.

르우벤은 과거에 자기 아버지 아내 라헬의 몸종 빌하와 간통한 사람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이제 자기 죄를 깨닫고 드디어 거듭났습니다. 천국 갔나요? 물론 천국에는 가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거듭난 자입니다.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를 건지고 자기 아버지에게 그를 돌아가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르우벤은 누구 편입니까? 르우벤은 요셉의 편입니다.

요셉도 거듭난 사람이고 르우벤도 거듭났으니까 이제 한편인 것입니다.

351절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오게 되자,

그들이 요셉에게서 그의 옷 그리고 그의 겉에 있는 채색 옷을 벗겼으며, 그를 데려왔으며,

구덩이로 그를 던졌는데, 그 구덩이는 그 안에 물이 없이 비어있었습니다.

이제 죽이지 않고 던졌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원래 물이 있는 곳입니다.

뭐예요.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가 없으니까 거듭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또 거듭나지 못하니까 은혜가 또 없는 것입니다.

352절

그들이 빵을 먹으려고 앉았으며, 자기들의 두눈을 들었으며 보았는데,

오! 길르앗에서 이스마엘족속들의 대상이 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낙타들은 향신료와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고 그의 피를 덮는 것이 무슨 이익인가?

너희는 가라! 우리는 그를 이스마엘족속들에게 팔고, 우리 손이 그에게 있으면 안된다.

그는 우리의 형제이며 우리의 몸이다.” 그들이 그 형제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들이 빵을 먹으려고 앉았으며,

빵을 먹습니다. 동생 던져놓고! 참! 대단합니다. 보통 악한 것이 아닙니다.

오! 길르앗에서 이스마엘족속들의 대상이 오는 것입니다.

길르앗이란 것은 구원 상실의 땅입니다.

이스마엘은 과거에 구원에 도달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구원 상실의 대명사가 이스마엘입니다.

대상은 큰 장삿꾼입니다. 무역상입니다.

뭐예요? 국제적인 사람들입니다.

이스마엘 자손들이 구원 상실된 자들인데 물 복을 많이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낙타들은 향신료와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낙타는 천국 못가는 부자를 말합니다.

부유함을 가지고 주님을 배신한 이들을 말합니다.

상품들도 고급 상품을 가지고 다닙니다.

애굽으로! 애굽 불신세계로 영혼들을 구원을 상실시키는데 쓰임받는 자들입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고 그의 피를 덮는 것이 무슨 이익인가?

너희는 가라! 우리는 그를 이스마엘족속들에게 팔고, 우리 손이 그에게 있으면 안된다.

유다도 거듭난 것입니다. 르우벤 거듭났습니다. 유다도 자기 며느리 다말과 간통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습니다. 그 다음에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거듭났을 것입니다.

구덩이에 있으면 죽으니까, 살리기 위해서! 르우벤은 죽이지 말자 구덩이에 던져라!

유다는 구덩이에 두지 말고 팔자! 왜 죽을까봐서! 지금 유다가 살리기 위해서 형제들에게 제안합니다.

그는 우리의 형제이며 우리의 몸이다.” 그들이 그 형제에게서 들었습니다.

9명의 나머지 형제들이 있는데, 악한 자들입니다.

이제 유다와 르우벤이 거듭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쪽은 거듭난 자들입니다.

요셉의 영적인 나이가 17세! 제일 영적인 나이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다, 르우벤 입니다. 이제 그들이 요셉을 살리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353절

매매하는 자들인 미디안족속들의 사람들이 통과하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서 올렸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이스마엘족속들에게 은 20개에 팔았습니다.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가져들고왔습니다.

매매하는 자들인 미디안족속들의 사람들이 통과하였습니다.

자! 미디안 직전에 이스마엘 자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갑자가 미디안 족속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대상은 낙타 10마리이상을 끌고 다닙니다.

그리고 이스마엘 족속들은 살림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건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그만 장삿꾼들이 있습니다. 누구예요. 미디안 족속들입니다.

그들은 낙타도 없고, 그냥 도보로 걷는, 또는 돈이 별로 없는 자들입니다. 작은 상인들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서 올렸습니다.

요셉을 팔기 위해서 끌어 올린 것입니다. 이스마엘 후손들은 돈이 많으니까 궂은 일들은 잘 안합니다.

미디안 족속들에게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는 궂은 일을 하고, 요셉을 인계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수수료는 받겠지요.

그들이 요셉을 이스마엘족속들에게 은 20개에 팔았습니다.

은 20개가 얼마일까요? 최하 2천만원, 많으면 1억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천만원에 팝니다. 누굴까요? 예수님도 은화 30개에 팔립니다.

은 20개! 어쩌면 요셉의 영적인 나이가 20살 일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나이가 20살이면 제가 볼 때 은 구원에 들어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우리를 징계로써 다시 성화시키십니다. 그래서 은 구원때, 징계가 많이 임합니다.

이제 요셉에게는 징계가 임하는 것이구요. 동시에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으로 팔린 것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가져들고왔습니다.

요셉이 드디어 애굽으로 팔려간 것입니다.

애굽은 뭐예요. 세상을 상징합니다. 세상은 뭐예요. 우리입니다.

이 자연계 곧 인간계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354절

르우벤이 구덩이에 돌아왔는데, 오! 구덩이에 요셉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의복들을 찢었으며, 자기 형제에게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자녀가 없다! 나는 어디로? 나는 가나?”

이제 르우벤이 구덩이에 갔다 왔나봅니다. 가서보니까 구덩이에 요셉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다!' 자녀! 르우벤이 요셉을 자녀처럼 아낀 것입니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인 것입니다. 거듭난 자입니다. 그러니까 아픈 것입니다.

'나는 어디로 가나!' 르우벤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이제 거듭난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고통에 아픔이 있습니다.

355절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왔으며, 염소들 중에서 숫염소를 희생시켰으며, 옷을 피에 찍었습니다.

그들은 채색 옷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에게 가져들고가게하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라건대, 그것이 당신 아들 옷인지 아닌지 알아보십시오!”

그가 그것을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의 옷이다. 악한 생명이 그를 먹었다.

요셉이 물어뜯어 물어뜯겼다.”

야곱이 자기 겉옷들을 찢었으며, 삼베를 그의 양옆구리에 매었으며,

자기 아들로 인하여 많은 날들을 스스로 슬퍼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의 모든 딸들이 그를 위로하려고 일어났지만,

그는 위로하는 것을 스스로 거절하였으며,

“내가 슬퍼하며 지옥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간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로 울었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왔으며, 염소들 중에서 숫염소를 희생시켰으며, 옷을 피에 찍었습니다.

염소는 배도입니다. 불순종입니다.

그래서 '속죄일' 때, 백성들을 대신해서 두 마리 염소를 죽입니다.

이제 우리 인간의 불순종을 대신하는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있느냐 입니다.

우리를 거듭남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듭남은 어디서 오느냐?

초림 때 육체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유월절 양이라고 부릅니다.

유월절이 거듭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거듭남을 위해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가시관으로 머리에 피가 흘려지고, 채찍에 맞아 피가 흘려지고,

그리고 창에 찔려서 물과 피가 나오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피가 흘려지고,

이 피흘린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서 우리 인간에게 거듭남이 온 것입니다.

거듭남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맨 마지막에 창을 찌를 때, '물과 피와 성령!'

제3위의 성령님이 왜 오느냐? 그 물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도 물론 성령님입니다.

왜?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느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뭐가 오느냐?

성령님이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거듭남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주자가 요셉과 유다와 르우벤 어떤 자들입니까?

양심이 살아있습니다. 아주 악하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악한 죄에선 벗어난 것입니다.

왜일까요? 성령님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물은 양심을 깨끗케 하고 우리 마음을 깨끗케 하는 물입니다.

그들은 채색 옷을 보냈습니다.

채색 옷은 거듭남입니다. 채색 옷! 거듭남이 온 인류에게 온 것입니다.

거듭남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은혜에서 온 것입니다.

“내 아들의 옷이다. 악한 생명이 그를 먹었다. 요셉이 물어뜯어 물어뜯겼다.”

당시 로마군인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모든 유대종파들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이게 됩니다.

마귀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겉옷들을 찢었으며, 삼베를 그의 양옆구리에 매었으며,

자기 아들로 인하여 많은 날들을 스스로 슬퍼하였습니다.

뭐예요! 애통하는 것입니다. 금식하는 것입니다. 슬퍼합니다. 야곱은 다릅니다.

르우벤과 유다는 마음이 약간 아픈데, 야곱은 그게 아닌 것입니다.

야곱은 많은 날들을, 많은 세월들을 회개합니다.

구원이 무엇이냐?

구원은 거듭난 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아 회개의 돌입되어 구원에 합당한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거듭난 자가 의롭게 되는 방법론입니다.

우린 의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냥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부어진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죄를 그 피로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홍포에 적셔진 그 피는 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피가 우리 죄를 씻는 능력되기 때문에 거듭남은 죄를 씻는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야곱의 울음은 그냥 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야곱은 구원 안에 있었지만 그 동안 지은 죄로 울기 시작합니다.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의 모든 딸들이 그를 위로하려고 일어났지만,

그는 위로하는 것을 스스로 거절하였으며,

위로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말씀이 놀라운 말씀입니다.

37장의 제목은 속죄의 그림자 요셉입니다.

속죄! 속죄는 구원입니다.

“내가 슬퍼하며 지옥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간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로 울었습니다.

'지옥으로!' 사실은 원래 스올입니다. 우리는 음부로 번역합니다. 지옥입니다.

왜? 지옥으로 번역하지 않을까요? 이 말씀들이 믿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아들이 내려간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천국을 믿습니다. 그죠!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자이며 야곱에게 인정된 훌륭한 자입니다.

그가 지옥에 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옥의 고통을 야곱이 영으로 안 것입니다.

이런 것 입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영이 지옥에 내려가십니다.

거기서 요나처럼 고통을 당하십니다. 왜? 당하시느냐? 그렇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내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통을 감당하십니다.

2천년 전, 십자가는 거듭남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구원은, 예수님이 당하는 그 고통은 지옥을 경험하고 들어오십니다.

뭐하기 위해서? 나를 건지기 위해서요!

어떤 건짐? 속죄의 건짐입니다.

율법에 속죄일에는 애통하며 슬퍼하며 하루를 지냅니다.

왜 일까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의 지옥의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내가 들어가 형벌을 받을 지옥을 내 대신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는 모든 것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입니다. 동일한 급수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할 형벌을 대신 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들! 물론 요셉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간 것을 영적으로 알고 나도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의 결론을 말합니다.

진짜 회개한 사람은 자신이 천국간다고 믿지 못합니다.

왜! 기독교가 천국을 확신할까요? 회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반대로 지옥을 믿게 됩니다. "내가 지옥 가는구나!" 그것이 회개의 결과입니다.

야곱이 육신적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고통이 심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 거기서 회개가 터진 것입니다.

불행이 올 때, 인간은 회개합니다.

드디어 야곱이 회개가 천국갈 정도로 완성되면서,

"내가 지옥에 가는구나!" 하고 지옥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 안되는 사람은 자기 죄가 큰지 모릅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면 할수록 죄가 크기 때문에 천국을 믿지 못합니다.

이제 야곱은 속죄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계시고, 지옥 같은 고통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일까요? 내 안에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다음에 눈물이 더 많아집니다. 애통이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회개가 깊어집니다.

왜일까요? 우리 안에 예수님의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에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계십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아는자는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안다고 하지만, 사실 아는게 아닙니다.

안다면 우리가 누구나 천국갑니다.

인간은 자기가 행한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언제 알까요? 지옥에서 압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는 모든 인생의 세월들이 죄의 인생이었습니다.

어느 한순간도 온전할 때가 없었습니다.

항상 인간은 배도하고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뜻을 어기고, 항상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갑니다.

단지, 우리 눈에 안보일 뿐이니다.

그러다가 은혜가 임하면 죄를 깨닫고 드디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를 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시는데 예수님을 속죄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의 주가 우리에게 오시는데, 그 수난은 영적인 수난입니다.

옛날 2000년 전에는 1회성 육체적인 수난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 한명을 위해서 2,000년 전 당하신 동일한 고통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을 수록 더 많이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이런과정 가운데, 배도했던 미디안 족속은 배도자들입니다. 이스마엘 족속도 배도자들입니다.

그들은 거듭남, 구원에 있다가 나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거듭남과 구원을 주시기 위해 당하신 예수님 고통을 가볍게 여긴 자들입니다.

결국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 야곱은 구원과 영생에 들어갔습니다.

온전한 구원의 단계를 이수했기에 계속 우는 것입니다.

356절

미디안족속들이 그를 바로의 신하이며 경호원들의 장관인 보디발, 애굽에게 팔았습니다.

미디안 족속들이 이스마엘 대상들의 밑에 있는 사람들이었겠지요.

판 것입니다. 예수님은 팔려간 것입니다.

이 지상에 자연계에 팔려오시고, 우리에게 팔려 오셨어요!

그리고 모든 고난을 짊어지시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그 수난, 고통앞에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는 끝이 없고, 우리의 악도 끝이 없습니다. 인간의 배도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죄악들을 날마다 하나님 앞에 보혈로 사함 받아야 합니다.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수난에 대해서 감사하고 감격해야합니다.

요셉! 그는 과거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이런 것을 짊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듭남과 구원과 영생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요셉은 속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속죄의 원형이신 예수님은 요셉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나를 위해 당하시기에,

날마다 찬송하고 그리고 감사히 여기며 고맙게 여기며 예수님께 항상 나아가야 합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37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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