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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2장 강해(Genesis 22 Exposition, Kyungho Park's Korean Translation of the Hebrew Bible]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2장 강해]

를 시청해보시고,

과연,

개역개정 성경과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이 무엇이 다른가?

과연,

기존의 성경해석과

박경호목사의 성경의 해석이 어떤 차이가 나는가?

한번

비교 분석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 큐 !!!

[박경호히브리어번역성경 창세기 22장 강해]

(제목 : 성령의 음성에의 순종 )

162절

이 일들 후에, 하나님들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데,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라건대, 너는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동반하라!

너는 모리아의 땅에 가라! 너는 내가 네게 말하는 산들 중 한 산, 그곳에서 그를 번제물로 올려라!”

이 일들 후에,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에서 가나안 땅에 오고, 애굽에 갔다가, 다시 헤브론에 왔다가,

다시 블레셋 갔다가, 다시 브엘세바에 오고, 이삭을 낳고 이삭이 다 자란 다음 일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데,

test, temptation 항상 교차되는 것이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temptation 하나님에게는 test 되는 것입니다.

너는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동반하라! 너는 모리아의 땅에 가라!

모리아의 땅! 어디일까요? 모리아 산에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리아! 모리아는 예루살렘에 있는 지역입니다.

내가 네게 말하는 산들 중 한 산,

어떤 산이 있을까요? 거기는 모리아 산! 성전 산! 예루살렘 성전도 있구요.

그 옆에 감람산도 있습니다. 또 왼쪽에 시온산도 있습니다.

시온산은 다윗이 여부스 족속을 점령한 다음에 얻은 산입니다.

북쪽으로는 갈보리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번제물로 올려라!”

번제물로! 누구를? 자식을! 짐승이 아닌 자식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장소가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163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일어났습니다. 그는 자기 수나귀에 안장지웠습니다.

그는 자기 두 소년과 그리고 자기 아들 이삭과 동반하였습니다. 그는 번제물의 나무들을 쪼개었습니다.

그는 일어났으며,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지역에 갔습니다.

세번째 날, 아브라함이 자기 두눈을 들어올렸으며, 그 지역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세번째 날,

직선 거리가 한 80km 그리고 곡선 거리는 120km입니다.

세 번째 날, 새벽이었습니다. 브엘세바로 부터 걷는 길이가 하루 60km입니다.

아브라함 현재 나이가 120세 가까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이삭 나이가 20살 정도 되었을 때 입니다.

이 때 얼마나 건강했는지 보통 1일당 장병들이 30km를 갑니다.

그런데 60km를 걷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건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두눈을 들어올렸으며, 그 지역을 멀리서 보았습니다.

새벽에 그 근처에 간 것입니다.

164절

아브라함이 자기 소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여기서 수나귀와 다함께 거하라! 나는 이 소년과 저기까지 가려한다.

우리는 스스로 절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려한다.”

아브라함이 번제물의 나무들을 가져왔으며, 자기 아들 이삭에게 메웠으며,

자기 손에 불 그리고 칼을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둘이 함께 갔습니다.

자기 소년들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종들입니다.

“너희는 여기서 수나귀와 함께 거하라!

수나귀의 영적인 의미는 거듭나고 봉사 많이 하고 지옥간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 소년과 저기까지 가려한다.

진보입니다. 어떤 진보입니까? 구원으로의 진보입니다. 누구입니까? 아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절하고,

번제물을 바칠 때, 불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번제물을 바칠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인 구약에 가 본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배 스타일입니다.

바칠 때, 절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탈까요? 번제물이 원래 상번제가 오전 9시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오후에는 오후 3시에 시작 됩니다. 6시간 간격입니다.

아마 6시간동안 불탈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저녁 상번제가 밤새도록 불탈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소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불탈수 있을 것 같습니다.

165절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

그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그가 말했습니다. “오! 불과 나무들은 있는데, 번제물로의 어린양은 어딨습니까? ”

번제물로의 어린양은 어딨습니까?

어린양! 그렇죠. 양이 없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항상 양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상 봐 왔습니다. 배웠습니다. 제물이 있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상한 것입니다. 양이 없는 것입니다. 신기하죠. 난생처음 있는 일일 것입니다.

166절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번제물로의 어린양을 보신다.”

그들은 둘이 다함께 갔습니다.

번제물로의 어린양을 보신다.”

이상합니다. 양이 어디 있나요? 양이 어디 있느냐하면 양은 저쪽에 있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번제물로의 어린양을? 뭔가 생략된 것입니다. ‘너로 보신다‘ 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문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그 말을 뺀 것입니다.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번제물로의 어린양을 ‘너로 보신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요? 도망 갈수도 있고, 무서워할 수 있고,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로 보신다‘ 빼냈습니다. 이삭이 이 말을 들었을 때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신다! 어디에 있는 것이지? 혹시 나인가? 헷갈릴 것입니다.

문장상 지금 어린양으로 보신다. 누구를? 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167절

그들은 하나님들이 그에게 말씀하신 지역에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건축하였으며, 나무들을 벌였으며, 자기 아들 이삭을 결박하였으며,

나무들 위쪽 제단 위에 그를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손을 내밀었으며,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려고 칼을 잡았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두하늘에서 그를 불렀으며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양이 없습니다. 이삭을 결박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왜? 그래요? 아버지 미치셨나요? 제가 양인가요?" 하고

분명히 거부했을 것입니다. 여기 동의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동의하고 아버지의 행동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양이었구나! "아! 아!" 하고 직전에 아브라함이 말한 것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들이 자기에게 번제물로의 어린양을 ‘너로' 보신다."

내가 양이었구나! 내가 바쳐져야 하는구나! 순간 감동이 왔을 것입니다.

결박을 받아들이고 또 묶이는 것입니다.

나무들 위쪽 제단 위에 그를 놓았습니다.

나무들 위에 누운 것입니다. 뭐하기 위해서요. 칼로 죽여야 하는데 보통은 목을 땁니다.

지금 이삭이 죽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양처럼 죽인 것입니다.

지금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음성대로, "아들을! 바쳐라!" 는 음성을 듣고,

일찍 일어나서, 3일 동안 걸어와서, 아들을 바치고 칼을 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삭은 동시에 자기를 양으로 본다는 말을 듣고 누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두하늘에서 그를 불렀으며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지금 죽이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들은 음성은 성부하나님 음성이 아닙니다. 왜요?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음성도 아닙니다. 예수님도 임재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세 분이 계신데, 세 분이 말씀하시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이 성령의 음성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삭도 받아들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168절

그가 말했습니다. “그 소년에게 네 손을 내밀면 안된다. 그에게 어떤것도 행하면 안된다.

네가 하나님들을 두려워하며,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서 아끼지 않은 것을, 내가 지금 알기 때문이다.”

"이제 되었어! 네가 바친 것과 다름이 없어! 너는 내게 순종을 한 거야!" 라고,

아브라함의 믿음이 인정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 그것이 첫 번째 계명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는 것, 우리의 본분입니다. 이제 시험에 통과되었습니다.

169절

아브라함이 자기 두눈을 들어올렸습니다.

오! 그는 뒤에 덤불에 두뿔이 붙잡혀있는 숫양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갔으며, 숫양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 대신 번제물로 그것을 올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지역의 이름을,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진다.”라고 오늘 전해지는 것같이,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덤불에 두뿔이 붙잡혀있는 숫양을 보았습니다.

"이제 죽이지 마!" 뒤를 돌아보니까, 덤불에 숫양이 걸려있는 것입니다. 어린양입니다.

그의 아들 대신 번제물로 그것을 올렸습니다.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어린양 속제물 예수님입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그것이 보여진다.”

산은 하나님의 예배처 입니다.

보여진다. 무엇이 보여집니까? 예수님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삭 대신에 예수님이 희생당하신 것입니다.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자! 이제 중요합니다. 지금 숫양이 어디서 왔습니까?

그것은 이삭이 결박되었고, 이삭이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속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삭이 지금 20살이 되었습니다. 구원 단계입니다. "구원! 구원이 무엇이냐?" 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순종합니다. 산상수훈에 순종합니다.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요? 죽기까지! 아니면,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원을 오해합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 거짓말입니다. 믿지 마세요!

이삭이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중에 성전이 왔습니다.

우리는 신앙을 아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이삭처럼 아브라함, 아버지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묶이면 묶이는 것입니다. 죽으라면 죽는 것입니다. 명령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 대해서 무엇이 주어지느냐 숫양 예수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귀한 피가 노숙자, 창녀, 그런 자들에게 주어질까요? 아닙니다.

이삭처럼 아버지 명령에 순종하는 자,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숫양이 오는 것입니다.

순종도 없습니다. 예배도 없습니다. 알라고만 가르칩니다. 거짓말입니다.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나도 이삭처럼 선지자의 말에, 성령에 음성에, 십계명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할 때, 속죄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이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산이라는 것이 저기 밖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예배처 입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산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속죄에 제사가 치뤄지는 것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거듭나고, 보혈로 씻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 대해서,

'여호와 이레'라는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이삭은 구원의 모델입니다.

드디어 이삭이 성장했습니다. 장성했습니다.

20살이 되었고, 아버지의 명령,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오늘 전해지는 것같이,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지는 것, 누구에게 보여집니까? 이삭처럼 순종하는 자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만들어냅니다. 계시다고 만들어냅니다.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안 보이는데 억지로 믿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보여지고 나타납니까? 누구에게 임재하십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순종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보여집니다.

직역입니다. 현재 개역개정은 이렇게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하지 않았을까요? 믿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떡상이라는 것은, 밀을 갈아서 떡으로 바쳐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생명을 바친 것이 떡상입니다. 십자가를 진 것이 떡상입니다.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가짜구원에 속으면 안됩니다.

170절

여호와의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두하늘에서 둘째로 불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내가 나로 여호와의 말씀이 맹세될 것인데, 내가 너를 축복하고 축복하며,

네 자손이 두하늘의 별들같고 바다의 둔치 위에 있는 모래같이 많아지게하고 많아지게할 것이며,

네 자손이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의 문을 점령한다.

네가 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땅의 모든 민족들 자신들이 네 자손으로 축복받을 것이다.”

내가 나로 여호와의 말씀이 맹세될 것인데,

너도 천국가고 후대도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네 자손이 두하늘의 별들같고

별들?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바다의 둔치 위에 있는 모래같이 많아지게하고

육신의 자녀도 많다는 것입니다.

네 자손이 자기를 대적하는 자들의 문을 점령한다.

아브라함같이 믿는 자는 영적으로 마귀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 믿고 구원을 받게됩니다.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이렇게 믿는자 곧 영적인 후손들도 대적의 문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삭! 이삭은 하나님을 향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들에게 참 구원이 오는 것이지, 돈, 명예, 이성, 취미생활, 자기 꿈을 가진 사람들이 천국 가겠습니까?

못갑니다. 생명보다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런 믿음 위에 온전한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네가 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땅의 모든 민족들 자신들이 네 자손으로 축복받을 것이다.”

이제 후손들도 천국가는데, 이삭도 그 모델로 보여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아까운 것이 없이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삭도 순종합니다.

이런 순종이 믿음이고 구원과 영생을 얻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171절

아브라함이 자기 소년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일어났으며, 함께 브엘-세바에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하였습니다.

브엘세바는 영생의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이 영생이 있기 때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입니다.

구원을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이제 이삭에게 참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삭은 산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속죄의 원인인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가 적용되었습니다.

이제 구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반대가 시작됩니다.

172절

이 일들 후에, 누군가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어 말했습니다.

“오! 밀가, 그녀도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아들들, 곧 그의 장자 우스 그리고 그의 형제 부스

그리고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 그리고 게셋 그리고 하소 그리고 빌다스 그리고 이들랍

그리고 브두엘을 낳았습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습니다.

이 여덟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에게서 밀가가 낳았습니다.

이름이 르우마인 그의 첩, 그녀도 데바 그리고 가함 그리고 다하스 그리고 마아가를 낳았습니다.

밀가,

아브라함, 나홀, 하란이 삼형제입니다.

하란이 죽습니다. 세 자녀가 있습니다. 롯과, 밀가와, 이스가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데려와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복 다른 어머니의 자녀인 사래와 결혼 합니다.

하란이 죽게 되는데 하란의 딸 밀가와 나홀이 결혼하게 됩니다.

나홀에게 아들들, 곧 그의 장자 우스

우스! 믿음 좋은 땅입니다. 거기서 욥이 나왔습니다.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

엘은 하나님입니다. 신앙이 좋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브두엘을 낳았습니다.

8명입니다. 8이란 숫자는 부흥의 숫자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참 구원을 단 한사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 나홀은 8명을 낳았습니다.

보기에 신앙도 좋습니다. 부흥합니다. 이름도 "엘" 자가 여러명입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습니다.

리브가는 나홀의 아들의 딸 곧 손녀로서, 나중에 아브라함이 며느리로 받아들입니다.

이 여덟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에게서 밀가가 낳았습니다.

이름이 르우마인 그의 첩, 그녀도 데바 그리고 가함 그리고 다하스 그리고 마아가를 낳았습니다.

여기는 번성해! 기독교가 엄청 부흥해! 놀랍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단 한명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나홀이 첩이 있습니다. 천국 갈수 없습니다. 지옥입니다. 정말일까요?

그녀도 데바 그리고 가함 그리고 다하스 그리고 마아가를 낳았습니다. 4죽을 4자입니다.

이들도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나홀의 자손들은 지옥갑니다. 거듭난 다음에 구원이 안됩니다.

12 거듭남의 숫자입니다.

자기 형제 나홀은, 거듭남을 많이 줍니다. 부흥합니다.

그러나 다! 지옥 갑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단 한명 있는데, 천국 갑니다.

나중에 브두엘도 라반도 하나님에게서 끊어집니다.

그들이 히브리어를 쓰지 않습니다. 아람어를 씁니다.

보기에는 두 개의 기독교인데, 하나는 막 부흥합니다. 거듭납니다. 몽땅! 지옥 갑니다.

모세 때, 60만명이 거듭났지만, 거의 다 지옥 갔습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한 명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왜일까요?

제목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십계명을 가르쳐줍니다. 성령의 음성은, 산상수훈을 알려줍니다.

성령의 음성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그것이 순종하는 백성입니다.

나홀 쪽은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가 첩을 얻은 것입니다. 불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도, 지옥 갔습니다.

부인이 둘이었습니다. 불순종하는 기독교,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안됩니다.

아브라함 쪽은 말씀에 절대 순종합니다.

순종을 안하는 기독교 거듭남을 줄 수는 있지만 영생이 안됩니다.

이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아브라함, 반대로 거듭남을 주는 나홀의 두 가문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한명이라 할지라도, 영생에 이르는 그 기독교가 참 기독교입니다.

열두 명을 낳았지만, 다 지옥가는 기독교는 가짜가 되는데, 거기는 음성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이 존재합니다.

성령님은, 성부하나님과, 예수님의 음성을 대변하고 스스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거부하면,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관이 십계명을 어기면 지옥 갑니다. 산상수훈 지켜야 천국 갑니다.

중요합니다. 성령의 음성은, 선지자의 말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성경의 해석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삶의 조명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마음의 감동입니다.

이제 음성의 순종을 통해서 이삭처럼 온 마음을, 온 뜻을, 모든 것을 다 드리는 자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독생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세계는, 한때 부흥할 수도 있지만, 영생이 안되고,

오직 구원받은 이삭에게 영생이 온 것처럼,

우리는 아브라함의 뒤를 따라가야 되고 오늘도 그 음성에 순종하고 따라야합니다.

성령의 음성은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습니다.

그 음성에 순종할 때, 구원과 영생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

듣지 않는 사람들은 나홀의 자녀들처럼 지옥갑니다."

박경호목사의

창세기 21장 강해가

당신의 마음에 드셨나요?

설사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해도

이 강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천국가는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입니다.

!!!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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